3. 말은 휘발되지만, 정서는 잊히지 않는다.

나의 무례한 엄마이야기

by 서울라

명문대-대기업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에 가려진 나의 깊고 진한 결핍 은 대부분 엄마에게서 왔다.


나는 부모의 지지와 응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너 때문에 돈이 많이 들게 생겼다. 누구처럼 교대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맞벌이를 하면서 운 좋게 우리 힘으로 집을 마련했을 땐,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평생을 빚만 갚으면서."


마음이 가난한 부모에게 자식의 열심은 짐이 된다. 나는 이 가난한 마음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아낌없는 가족 간의 사랑과 연대의 힘을 믿는다.


엄마는 이제 "너 키우느라 돈을 많이 들였으니 칠순 이후에는 나를 먹여 살려라." 한다.

부모에게 어떤 기대를 할 수 없이 자란 사람에게는 감정의 동요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낡고 희미해진 원망의 마음이 늙고 허약해진 부모 앞에 무거운 짐으로 남는다.


말은 휘발되지만, 정서는 잊히지 않는다.
미처 도려내지 못한 아픔 뒤에는 잔상이 남는다. 내 글의 대부분은 엄마를 용서하기 위해 그 희미한 잔상을 기록한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엔 아주 나쁜 날들이 계속되었고, 그래서 나라도 나를 보살피고 싶었다. 나라도 나를 기특해하고 싶었다. 될 대로 돼라 하고 부러 미친 척 알코올을 목구멍에 털어 넣으면서도 나는 사실 나를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그런 절박함으로 살아왔다.


사정없이 뾰족했던 마음을 마주하 것은 때때로 괴롭지만, 단어로 정돈된 상처의 흔적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자면 "그래, 이제 불행은 끝났어." 하는 안도감이 든다.


부모라는 이름의 불운. 그 불운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마음가짐에 대해 줄곧 생각한다.

이 글은, 불운할지언정 불행하지 겠노라 다짐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처연하지만 명랑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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