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사주로 그려진 몽타주일지라도

사주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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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기로 했던 지인이 뜬금없이 사주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 잘하는 곳을 안다며 나를 끌고 갔다. 사실 예전부터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끌고 같이 가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의 영역인 사주에 내 발로 찾아가서 기어코 돈을 쓰는 사람을 자처하고 싶지 않은 심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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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삶이라는 그대의 어깨를 잡고, 잠시 멈추어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한 발자국 앞서가는 그는 결코 앞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행여 놓칠세라 뒤꽁무니만을 총총 따라가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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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때는 누구를 쫓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그의 뒤통수와 옆통수를 닮은 존재를 찾아 또다시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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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팅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인상착의를 알려주는 것처럼, 나는 삶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가 필요했다. 그 지표가 바로 애석하게도 믿거나 말거나 사주팔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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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명리학 책과 찌든 담배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8개의 한자 뜻풀이가 떠다니던 사무실에서 그의 인상착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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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자를 보시면, 선생님은 쥐라는 동물을 깔고 앉아 있어요... 사주에 물의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대운이 여름을 향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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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풀이의 절반 이상을 날려먹었다.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해주셨지만, 친절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삶이 그토록 쉽겠냐는 꾸중을 내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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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손해 볼세라 듣고 싶은 것, 원하는 것만 골라 듣고는 내 멋대로 해석했다. 상상했던 이상형의 얼굴이 조금씩 조합이 되며 대충 형태가 그려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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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상상에 확신을 더해줄 제3자의 말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듣기 위해 대가를 지불한 것일지도.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왜 돈을 주고 듣고 오느냐고, 자기가 해주겠다고, 너는 잘 하고 있고 앞으로 인생이 잘 풀릴 거라고.

 

 하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의 입에서 내 운명이 그려질 때 오히려 더 신뢰감을 얻는다. 사주팔자의 뜻풀이가 평소 고민거리와 관련이 있다면 그 신뢰감은 배로 쌓인다. 우연과 필연 사이를 넘나드는 그들의 말에 짜릿함을 즐기며 삶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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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라는 그대의 어깨를 잡고 '저기요'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대가 돌아보며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까. 그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답을 해줄 수 있다면,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그의 몽타주를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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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사주로 그려진 몽타주일지라도.

[ untitle,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