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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 Sep 30. 2022

수호천사

내가 죽으면 너를

삶에 대한 과한 욕심이 없어진지는  최근이다. 한번 주어진 생을 최대한  살아보고 싶어 온갖 욕심과 욕망을 들쳐업은  오래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나아가려니 진전은커녕 퇴보하는 느낌이 강했고, 무얼 하든 불안과 두려움이 앞서 작은 실패 앞에서도 크게 무너졌다.




무너지길 반복하면서 이대로는 큰일이 날 것 같아 나름의 돌파구를 찾았다. 그것은 '현재에 만족하기'였다. 불안의 근본 원인인 '욕심'이라는 녀석을 해결해야만 했다.




욕심은 지금보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발현되는 마음이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계속 바라면서 '더'를 외치는 마음. 내게 주어질 앞으로의 시간이 보다 더 좋은 시간으로만 가득 차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현재 주어진 시간과 일상에 만족한다면 '더'를 외쳤을까.




그렇게 '지금 현재'에 집중하고 내가 가진 것, 주위의 사람, 보내는 시간에 만족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불평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만족하는 것에 익숙해지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의미에 좀 더 가깝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득도를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원하는 것은 많고 이뤄내야만 할 것도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당장 끝이 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이며, 다음 생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역시 거절하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있다.






호이와 나는 매일 밤 시답잖은 농담과 장난, 때론 진지한 대화, 그리고 아주 가끔 목과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토론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며칠 전,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목과 이마가 벌게지도록 장난 섞인 토론을 했다. 서로의 주장을 밀어붙이느라 설득과 납득의 과정이 없어 토론이라고 불리기엔 민망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열성을 다해 각자의 주장을 피력했다.



주제는, '내가 죽어서 천사가 된다면' 이었다.



호이의 주장은 본인이 죽으면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 언제 어디서나 안전을 위해 지켜준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나는 죽어서 천사가 된다면 호이를 데려오겠다는 주장이었다. 주장에 대한 뒷받침은 서로 동일했다. 사랑하니까.




서로의 주장을 듣고는 곧바로 협박 같은 간청을 늘어놓았다. 호이는 세상을 좀 더 많이, 더 오래 경험하고 싶기 때문에 내가 먼저 죽거늘 부디 데려가지 말란다. 반면, 나는 지금도 현세에 대한 미련이 없기 때문에 호이가 먼저 죽거늘 제발 나를 데려가달라고 했다.




시작은 같으나 끝이 다른 우리의 주장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은 서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며 일단락했다.






목덜미가 서늘해진 가을이다. 습기로 가득 찼던 공기의 공백이 느껴져 허탈하기도, 새로이 채울 그 무언가에 의해 설레기도 한 계절이다. 복잡 미묘한 이 마음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알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나는 이 계절과 이 마음을 마주 한지 고작 스물다섯 번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까. 100세 시대인 요즘, 나의 수명도 약 75년은 더 남은 걸까. 앞으로 일흔다섯 번 정도는 더 이 계절을 마주하면 이 마음의 모양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새삼 세상을 경험한 절대량이 아직은 너무나 적은  같다고 느껴졌다. 내가 만족하는 현재로 끝마쳐도 괜찮은 건지, 정말 여한없이 죽을  있는건지 다시 생각해 보며 간밤 호이의 수호천사에게 고맙다고 작게 되뇌었다.


[ Leaf,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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