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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아 Oct 07. 2022

몽타주

사주로 그려진 몽타주일지라도

사주를 봤다.



 만나기로 했던 지인이 뜬금없이 사주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 잘하는 곳을 안다며 나를 끌고 갔다. 사실 예전부터 누군가 내 뒷덜미를 잡아끌고 같이 가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의 영역인 사주에 내 발로 찾아가서 기어코 돈을 쓰는 사람을 자처하고 싶지 않은 심리였나 보다.



 가끔 삶이라는 그대의 어깨를 잡고, 잠시 멈추어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한 발자국 앞서가는 그는 결코 앞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기에, 행여 놓칠세라 뒤꽁무니만을 총총 따라가는 나였다.



 어느 때는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때는 누구를 쫓아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그의 뒤통수와 옆통수를 닮은 존재를 찾아 또다시 헤매게 된다.



 소개팅 약속 장소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게 인상착의를 알려주는 것처럼, 나는 삶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한 지표가 필요했다. 그 지표가 바로 애석하게도 믿거나 말거나 사주팔자였다.





 낡은 명리학 책과 찌든 담배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8개의 한자 뜻풀이가 떠다니던 사무실에서 그의 인상착의를 들었다.



"이 한자를 보시면, 선생님은 쥐라는 동물을 깔고 앉아 있어요... 사주에 물의 속성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대운이 여름을 향하고 있어..."



 뜻풀이의 절반 이상을 날려먹었다.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해주셨지만, 친절하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삶이 그토록 쉽겠냐는 꾸중을 내리듯.



 그래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손해 볼세라 듣고 싶은 것, 원하는 것만 골라 듣고는 내 멋대로 해석했다. 상상했던 이상형의 얼굴이 조금씩 조합이 되며 대충 형태가 그려지는 듯했다.





 내 상상에 확신을 더해줄 제3자의 말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듣기 위해 대가를 지불한 것일지도.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왜 돈을 주고 듣고 오느냐고, 자기가 해주겠다고, 너는 잘 하고 있고 앞으로 인생이 잘 풀릴 거라고.


 


 하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의 입에서 내 운명이 그려질 때 오히려 더 신뢰감을 얻는다. 사주팔자의 뜻풀이가 평소 고민거리와 관련이 있다면 그 신뢰감은 배로 쌓인다. 우연과 필연 사이를 넘나드는 그들의 말에 짜릿함을 즐기며 삶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삶이라는 그대의 어깨를 잡고 '저기요'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대가 돌아보며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까. 그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답을 해줄 수 있다면,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그의 몽타주를 그려야겠다.



비록 사주로 그려진 몽타주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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