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예보하고 있는 하늘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미세먼지마저 하늘을 뒤덮고 있어 종일 해를 볼 수 없었다.
기온이 좀 낮았으면 12월답게 눈이 되어 흩날릴 텐데....
일 년 중 12월은 유독 그 하루의 무게가 무겁기만 하다.
아마 11개월을 가볍게 보낸 사람의 죄책감과 후회의 무게가 아닐까 싶다.
12월의 하루하루는 뭔가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톨 낭비하는 시간 없이 알차게 보내야만 될 것 같다.
왠지 그래야 2023년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올초에 나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한해를 맞이했던가!
그리고 그 계획 중 어떤 것을 실천했고, 이루었을까?
매년 빠지지 않는 다이어트와, 경제적인 풍요를 위한 파이프라인 구축, 일주일에 글 한편 발행이 있었을 터였다.
첫 번째 다이어트는 늘 그랬듯 지지부진하지만, 현재 몸무게에서 더 늘지 않았다는 거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12월이 다 가지 않았기에 남은 기간만이라도 몸무게 줄이기에 매진해야겠다.
두 번째 파이프라인 구축은 올해가 가기 전에 가장 간단한 거 하나라도 뭔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부업을 실행해 봐야겠다. 계속 탐색만 하다가 제대로 실행에 옮긴 게 없으니 12월 안에 뭐라도 실행을 해보려 한다.
세 번째, 일주일에 글 한편 쓰기는 두 번 건너뛰었지만(한 번 건너뛴 줄 알았는데 체크를 해 보니 두 번이나 건너뛰었다), 나머지는 꽉꽉 채워 발행해 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올 한 해 50개의 글이 발행될 것이다.
학창 시절, 방학 끝날 몰아서 쓰던 일기가 생각났다.
나이가 든 지금도 여전히 변한 게 없이 방학숙제 몰아서 하듯 12월에 와서야 이렇게 바쁘다니....
그 한결같음에 쓴웃음이 났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 12월에라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지어먹은 내 마음이 고마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올해의 경제는 불황의 시작이었다. 우리 문구점 역시 코로나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
그 와중에 내년 2024년의 경제전망도 어둡기 짝이 없다.
문구점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불황의 징후 두 가지가 있다.
매출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니, 그건 차치하더라도 일단 집에서 잠자고 있던 동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빛 잃은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 동전을 들고 와서 계산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돈통이 지폐가 아니라 동전들로 묵직해지면 요즘 경기가 안 좋구나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볼펜 리필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볼펜은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다. 게다가 굵기도 제각각이고 색상마저 몇 가지씩 되니 그 많은 볼펜의 리필심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경기가 좋을 때는 리필심에 대한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만큼 작은 것부터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걸 알 수 있다.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번쩍! 쿠르릉~ 꽝!! 천둥 번개가 치면서 세차게 비가 쏟아진다.
순식간에 밖이 암흑세상이 되었다.
쏟아지는 비에 멀리서 아이들의 돌고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아직 밝을 시각인데, 주위는 온통 암흑에 휩싸여 있고, 성난 천둥은 여전히 기세 좋게 으르렁대고 있다.
가게 건너편 통창으로 보이는 카페는 무슨 일인지 며칠째 문이 닫혀 있다.
그 카페 앞에 정차된 자동차위로 쏟아지는 빗줄기가 보인다.
출입문을 다 닫았음에도 빗소리가 세차게 들려온다.
비가 쏟아지는 캄캄한 어둠 속, 카페 간판의 글자로고에 밝혀진 백색 불빛이 어둠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둥실 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온통 환한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밖의 어둠 속을 거닐고 있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어둡고, 고요하고, 낯설고, 축축한 무게감을 장착하고 저물어 간다.
2023년이 2024년에게 바통을 넘겨주기까지 이십여 일이 남아 있다.
남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나의 2023년이 달라질 수 있을까?
세차게 퍼붓던 비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이미 내린 암흑 같은 어둠은 여전히 세상을 뒤덮고 있다.
2024년이 저만치 서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2023년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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