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토끼 Dec 02. 2023

써지지 않는 글

매주 토요일 글을 발행한다.

그저 스스로 정한 약속....

하지만, 이미 한번 어긴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성질이 급한 나는 늘 미리 글을 써 놓는 편이다.

블로그와 브런치 두 군데서 발행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늘 글을 올리는 10시에서 11시가 되도록 글을 쓰지 못했다. 


지난 주말, 서산에 사는 남동생네 집에서 동생부부가 직접 키운 배추와 무, 채소들을 뽑아서 김장을 했다

서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와서 퇴직을 한 남동생.

바닷가마을 한 달 살기에 도전하며 이곳저곳을 헤매다 서산 작은 바닷가마을에 드디어 정착한 일....

그곳에서 어렵게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처음으로 배추와 채소를 키운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를 쓰는데 글이 진행이 되지 않는 거였다.

무슨 일인지 도저히 글이 써지질 않았다.

그래서 김장이야기를 다 지워버렸다.

< 동생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다와 노을 >

그러자, 갑자기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번주에도 글을 발행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난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올리면서 글감이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어떤 글이든 일주일에 한편이야 가볍게 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이 써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런 적은 또 처음이었다.


마치 내 마음속 어떤 불씨가 다 사그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글은 왜 쓰는 거지?

지지부진한 삶만큼, 지지부진한 내 글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손 놓고 싶다....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편히 쉬고 싶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그 늪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블로그가 오랜 친정집 같은 분위기라면 브런치는 새로 이사 와서 아는 이 하나 없는 동네 같은 느낌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1년 9개월이 되었건만 시간 없음을 핑계로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누지도, 말을 걸지도 않는다. 

아니, 벌써 몇 개월째 블로그조차 공감, 댓글을 막아 놓고 있는 중이다.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사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사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가게 건물주인이 바뀌면서 불황인 이때 가게 월세가 오른 때문이었다.

오른 월세만큼 뭔가 경제적인 활동을 더해서 그 차이를 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마음의 여유만 잡아먹었을 뿐, 12월이 다된 지금까지 어떤 구체적인 실행을 하지 못한 채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세 번째는 변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뭔가, 60이라는 숫자를 만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기 계발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자기 계발 동영상을 듣고, 자기 계발 책을 읽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하루하루 이전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건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하기만 한 내가 밉다.


이런 내 마음이 마구 소용돌이쳐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나 보다.

한동안 평정심에 가려있던, 아니 깊게 눌러 놓았던 어떤 것들이 갑자기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나 보다.


아마도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자각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올해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보내게 되는 걸까?




바람이 분다. 구름으로 잔뜩 덮인 하늘....




주말이라 늦은 출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반납하고, 예약된 책을 가져와야 하는데, 원래 반납일이 지났건만 빌려간 누군가가 날짜를 지키지 않았다.

빈손으로 오기가 뭔가 아쉬워 그냥 손이 닿는 대로 책을 한 권 뽑아 왔다.

세계 추리소설 단편선이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이 책 속에 빠져 봐야겠다.

워낙 어릴 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는데, 무의식이 나를 이 책으로 인도한 모양이었다.


주말이라 평일보다 조용한 가게 안에서 평소 내가 좋아하던 추리소설을 읽는 대신 지금 나는 써지지 않는 글을 기를 쓰면서 쓰고 있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토요일이 가기 전에 꼭 한 편의 글을 발행하리라!!

왠지 한번 어긴 약속을 또 어기는 사람은 되기 싫었다.

그런 못난 나로 올해를 마감하기는 싫다.


더 이상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시간 낭비를 하는 나를 보는 건 더더욱 싫다.


그동안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듣고 읽지 않았던가!

자기 연민, 자기 위로에 빠지지 말기로 하자!


잠깐의 안 좋았던 감정일랑 흐르는 파도처럼 흘러가게 놔두기로 하자!

난 감정의 주인이고, 나쁜 감정은 흘려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











작가의 이전글 가을 일곱 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