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겨울비 답지 않게 제법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오늘은 눈이 되어 펑펑 내리고 있다.
내일 부터는 강추위가 몰려올 예정이다.
가게에서 보이는 아파트 출입구에 12월이 되자 반짝반짝 오색영롱한 빛이 밝혀졌다.
어둠 속에서 불이 켜지면, 색색의 전구들이 나름의 패턴으로 빛을 밝힌다.
그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속이 간질간질, 따스해지는 것만 같다.
언제부턴가 우리 문구점에서는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들이 사라져 버렸다.
한때는 크리스마스가 문구점 대목을 차지하는 날들 중 하루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여느 공휴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특별함을 간직했던 하루들이 그저 의미 없는 하루로 변한 것들이 어찌 크리스마스뿐일까?
빼빼로데이도, 스승의 날도, 화이트데이나 밸런타인데이도 예전에는 문구점의 큰 대목들 중 하루들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모든 문구점 대목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사라진 날들만큼 내 마음속의 설렘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꼭 매출이 올라서 기분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을 모아 누군가에게 뭔가를 선물한다는 그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그런 날들이면 왠지 며칠 전부터 들뜨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주변이 아이들의 신나는 기분으로 퐁퐁 밝아지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더 이상 느껴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의 존재를 알기 전과 후의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갖는 순간은 의외로 유치원에서 시작된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 딸의 경우를 보면 그랬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산타 행사를 한다.
그때 유치원 체육을 담당해 주셨던 선생님이 산타분장을 했던 거였다.
아이들의 눈썰미를 무시하면 안 된다.
산타 옷을 입고 수염을 붙였지만, 딸은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그 체육 선생님임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리고, 왜 산타 할아버지가 그 선생님인지, 뭔가 신비롭게 생각했던 산타에 대한 개념이 그때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유치원 행사 후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딸의 의심이 어떻게 해소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어찌 나는 딸에게서 산타의 존재를 지켜 주었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딸은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2학년이 된 딸이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서 내게 말했다.
"엄마, 친구들이 산타 할아버지는 안 계신대~~"
"누가 그래? 산타 할아버지가 왜 안 계셔? 핀란드에 산타마을이 있잖아~~ 그곳에 살고 계셔~~"
그해 나는 핀란드 산타마을에서 받는 엽서를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12월만 되면 산타의 존재를 지켜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었다.
심지어 나는 딸에게 너는 특별한 아이라서 산타 할아버지께 선물을 받고 있는 거라고 가스라이팅을 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마 딸은 다른 친구들이 산타가 없다고 해도 자기는 특별하기 때문에 선물을 받는 거라고 굳게 믿는 것 같았다.
하지만, 4학년이 되자 나는 산타를 믿는 딸이 혹시라도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딸 모르게 선물을 준비하는 일이 점점 벅차기도 했다.
많은 생각 끝에 4학년이 된 크리스마스 즈음에 딸에게 산타에 대한 커밍아웃을 하고 말았다.
그날 딸은 펑펑 눈물을 쏟으며 너무나도 슬프게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경솔했을까 싶다. 그냥 저절로 알게 될 때까지 지켜줄 것을....
어차피 그리 머지않아 딸도 진실을 알게 되었을 텐데 말이다.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끔 엄마의 산타 커밍아웃에 세상이 무너지듯 펑펑 눈물을 흘리던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딸은 그해의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