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그야말로 쨍한 추위다.
매서운 바람에 패딩 모자가 휙 벗겨진다.
맞바람 때문에 다시 쓴 모자가 팽팽해지며 뒤로 벗겨지려 해서 양손으로 붙잡았다.
내 온몸을 바람이 자꾸 뒤로 뒤로 밀어낸다.
방학 그리고 한파가 몰아닥친 날의 출근길 풍경이다.
이렇게 쨍하게 추운 날 하늘을 보면 파랗다.
여유 있고, 느긋한 출근길이다.
바람이 붕붕 소리를 내며 내 몸을 밀어내고, 나는 그 바람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이런 바람 따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걸어서 15분 남짓한 출근길이 나는 참 좋다.
매일매일 똑같지 않아서 좋다.
보는 풍경은 변함이 없을 텐데 이상하게 매일매일이 다르다.
하늘도 다르고, 구름도 다르고, 햇살도 다르고, 바람도 다르고, 공기의 냄새도 다르고, 날씨도 다르다.
이 추운 날 가게 앞 아파트 단지에 이삿짐 사다리가 걸쳐 있었다.
누군가 이사를 가는 걸까? 아님 새로 이사를 오는 걸까?
그러고 보니 단골이던 아이들이 안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아이들은 이사를 간 거였겠구나 그걸 지금 깨닫는다.
서울에 사는 딸에게서 톡이 왔다.
갑자기 온수가 안 나온다는 거였다.
난방도 이상 없이 되고, 냉수는 잘 나오는데 온수 쪽으로 틀면 물이 안 나온단다.
추운 날씨 때문인 것 같았다.
작년 4월, 딸이 작업실 근처로 이사를 했었다.
딸은 직장을 다녀 본 적이 없다. 딸의 직업은 음악가? 하지만 소속이 없으니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다.
앨범도 몇 장 냈지만 그걸로 먹고살지는 못한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레슨도 하고, CM 녹음도 하며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어쨌든 좋아하는 음악 언저리에서 먹고살고는 있다.
월세를 내더라도 일하는 곳 가까이 자리를 잡고 싶어 했기에 그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얼마 전 끝난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정말 실력 있지만 무명인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유명해져서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 힘든 길이 뮤지션의 길이 아닐까 싶다.
반짝 유명해져도 그 이름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기만 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뮤지션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딸은 늘 뭔가 목마름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나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한다.
딸이 보일러 회사로 전화를 했는데, 온수 쪽이 언 것 같다며 그건 보일러 A/S가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주인에게 전화를 했고, 설비 아저씨가 다녀갔다.
수리비 15만 원이 나왔는데 이 수리비는 관리를 제대로 못한 딸의 책임이기에 딸이 지불을 해야만 했다.
결국 한파 때문에 불필요한 경비가 지출되었다.
딸은 이것도 경험이지 뭐 하면서 해맑은 소리를 한다. 딸아, 그런 경험은 안 해도 되는 경험 아닐까?
속은 쓰리지만 그나마 동파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가게의 매출은 날씨를 많이 탄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더워도 추워도 손님은 없다.
최저 영하 12도, 최고 영하 8도를 기록한 어제는 그래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
그렇지만 다행히 최저 매출을 기록한 건 아니어서 감사했다.
오늘도 추우니 매출에 대한 기대를 접었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기분이 상쾌하다.
쌀쌀한 이 날씨가, 쨍한 이 느낌이 겨울다워서 좋다.
어제 그렇게 불던 바람이 오늘은 잔잔해졌다. 햇살이 따스하게 세상을 비추고 있다.
가게 안은 서늘하고 고요하다.
주머니 안의 핫팩을 살며시 어루만져 본다. 따스함이 손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커피포트에서 보글보글 물이 끓고 있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번 주 올릴 글을 완성해 본다.
지금은 제일 춥고 매서운 겨울의 한가운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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