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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Feb 24. 2024

몸살

남편과 둘이 문구점을 운영할 때의 은애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몸살을 앓곤 했었다.

오전 7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에 가게 문을 닫았으니 하루 꼬박 17시간 가게 문은 늘 열려 있었다.

물론 꼬박 17시간씩 일한 건 아니었다. 중간에 남편과 교대로 집을 다녀오기도 했으니 말이다.

휴일도 없었고, 심지어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는 정리가 끝나면 새벽 2,3시가 되기도 했다.


그랬으니 환절기마다 앓아눕는 일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철마다 2박 3일을 꼬박 앓아눕던 은애가 어느새 이런 환경에 적응이 되기 시작했는지, 계절마다 앓던 몸살이 일 년에 두 번으로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한 번으로 줄었다.


우연히 TV에서 비타민C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1000mg 비타민 C를 챙겨 먹은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그 길목에서는 몸살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사실 몸살이 찾아오면 쉬면 나을 일이지만, 온전히 쉴 수가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서럽기도 했다.

은애가 쉬면 그 시간만큼 고스란히 남편에게 일이 떠 넘겨지기에, 아주 힘들지 않으면 은애는 미련하게 가게를 지키러 나왔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은애는 땡순이었다. 시계가 여섯 시를 가리키면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먼저 인사를 하고 칼퇴근을 했었다. 그랬던 은애가 자영업자의 아내가 되면서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가게에 갈아 넣는 사람으로 변했던 거였다. 그건 은애의 의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남편의 의지였고, 은애는 그걸 묵묵히 따라주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씩 꼬박 은애를 찾아오던 몸살이 더는 은애를 찾아오지 않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코로나 때부터였다.

코로나를 만나면서 매출이 급감했고, 은애의 남편은 가게를 온전히 은애에게 맡기고 다른 일을 하러 떠났다.

그렇게 은애는 혼자 가게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 diana_pole, 출처 Unsplash


은애는 당장 근무시간 조정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에는 문을 열어야 해서 아침 여덟 시에 문을 열고, 저녁시간은 오후 9시로 당겼다가 다시 오후 8시로 당기게 되었다.

주말에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로 시간을 확 줄였다.

한 달에 한번 쉬는 날도 마음대로 정했다.

혼자 물건을 팔고, 재고 파악을 하고, 주문도 하고, 정리도 하고, 신제품 등록도 해야 하니 할 일은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시국이란 거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으니 매출이 줄어든 만큼 시간은 여유롭기만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들어오던 택배물량이 일주일에 한 번, 심지어 이주에 한번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만큼 일도 줄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긴 근무시간에서 벗어난 영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수시로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써서인지 그렇게 꼬박꼬박 은애를 찾아와 괴롭히던 몸살이 은애를 찾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은 은애를 찾아오긴 한다.

그렇지만, 예전에 꼬박꼬박 찾아오던 때에 비하면 그 빈도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앓는 날도 줄어들었다.

2박 3일에서 더 긴 시간을 앓았다면, 이제는 하루, 이틀이면 은애를 떠나간다.


벌써 겨울방학이 끝나간다. 

문구점은 이제부터 일 년 중 제일 바쁜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마치 폭풍이 몰아닥치기 전의 고요처럼 느린 듯 빠르게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을 은애는 느긋하고 여유롭게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이제 겨울이 지나갔구나 생각할 만큼 온화하던 날씨가 며칠 비가 주룩주룩 오더니,  난데없이 펑펑 눈 폭탄을 선사했다.  결코 곱게 물러갈 수 없다는 겨울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몸살이라는 녀석은 이런 빈틈을 노린다.

올해는 몸살이라는 녀석이 아예 자신을 잊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은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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