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 문구점 아줌마인 은애에게는 일 년 중 3월이 가장 바쁜 시기이다.
2월부터 신학기 용품을 체크하고, 주문하고, 진열하고, 물건이 없어 못 파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지만, 꼭 한두 가지 모자라는 물품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든든히 준비한 덕분에 아직까지 모자란 물건은 없다.
작년 2월에 신학기용으로 미리 적금을 들어 둔 덕분에 돈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외의 복병이 발생을 했다.
작년 신학기 때 일 매출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물량을 작년에 맞춰 준비를 했더니 이제는 물건들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개학 전날, 개학날, 그리고 그다음 날 이렇게 피크 3일의 매출이 딱 작년의 2/3 수준에서 멈추고 말았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바로 근처에 있는 무엇이든 다 있다는 다oo의 영향이 컸다.
물건의 질이야 당연히 다르겠지만, 가성비에서 완전한 패배였다.
무엇보다 이해 안 되는 점이 정가 9,600 원하는 네임펜의 가격이 그곳에서는 3,000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당연히 같은 상품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너무 알고 싶을 정도였다.
한번 쓰면 증발해서 색이 나오지 않는 제품인 걸까?, 아니면 몸에 안 좋은 성분으로 범벅이라도 된 제품인 걸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차마 경쟁조차 할 수 없는 가격이니 그저 무기력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애의 문구점을 찾아와 준 고객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단기간에 몰리다 보니 가끔 별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도 발생을 한다.
개학날, 아이들 등교 시간이 임박한 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날이다 보니 계산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줄도 거의 끝나가고 띄엄띄엄 아이들이 있을 때였다.
고학년 아들과, 저학년 딸을 데리고 엄마 한 분이 다급하게 들어오셨다.
아이들이 필요한 물품을 이것저것 사면서 계좌이체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뒤, 등교 시간이 늦었다며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와도 되냐고 하셨다.
흔쾌히 그러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른 아이들 계산을 마치고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등교를 했고, 가게는 조용해졌다.
잠시 뒤 그 엄마가 와서 계좌번호를 물어보셨다. 그러더니 현금이 조금 모자란다며 남편에게 이체를 해달라고 해야겠다며 문자를 보내는 거였다.
그러고는 스티커와 사은품까지 챙겨서 유유히 사라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입금은 되지 않았다.
아이들도 평소 잘 오지 않는, 얼굴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었고, 엄마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의심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니 어쩐지 처음부터 의도된 행동이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부터 계좌이체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라든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와서 돈이 모자란다고 한 것이라든지, 남편에게 보내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 버린 거까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면, 남편분은 일하느라 입금하는 걸 잊어버렸고, 그 엄마는 당연히 남편이 보냈다고 생각한 그런 상황인 걸까? 아마도 그런거라고 믿고 싶다.
3월이다.
하늘은 파랗지만, 바람이 차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손이 조금 시려울 정도이다.
봄은 언제나 쉽게 순순히 오는 법이 없다.
늘 꽃샘추위와 함께 온다.
그래도 나무들은 이 추위를 뚫고 수줍게 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살짝 꽃망울을 내밀고 있는 나무들이 너무 앙증맞다.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도 봄은 이미 은애 옆에 와 있다.
바빠서 미처 누리지 못한 봄을 이제 충분히 누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니 파란 하늘처럼 기분이 상쾌해진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봄의 흔적이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