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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Apr 20. 2024

봄날은 간다....

꽃들의 이름이 바뀌며 봄날은 간다....

매화와 산수유로 시작된 봄은 화사한 벚꽃으로 만개하다 벚꽃비를 맞으며 피어난 색색의 철쭉꽃들의 향연으로 마무리된다.

날마다 조금씩 따사로움의 수위를 높이며 이글대는 햇살의 열기를 높이며 봄날은 간다....


봄날은 

포근하고, 따사롭다.

간지럽고, 나른하다.

온통 풋풋한 연초록이다.




모처럼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비.

이 비를 머금고 연둣빛 나뭇잎들은 점점 그 색이 짙어질 것이다. 


여유롭고, 고요하고, 상큼한 비 오는 토요일...

언제부턴가 시작된 LED등의 점멸이 마치 앞날을 알 수 없는 나의 미래같이 불안하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유영하고, 뿌연 먼지를 일으켜 잔뜩 흐려있다.


마음이 떠나간 공간은 불투명하고 무질서하고 공허하기만 한 카오스 그 자체이다.

공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설레다가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서는 어찌하는 게 좋을지 갈팡질팡이다. 

상황을 간접적으로 직시하면 정리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 같기도 하고, 뭔가 이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기 힘이 들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봄이어서 일까?

마음도, 몸도 한없이 무거워졌다.

땅밑에서 뭔가가 자꾸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났다. 

가끔씩 찾아오는 그 녀석이 또 나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으로 나는 녀석이 결국은 다시 떠날 것을 알고 있다.

 

무작정 길을 나선다.

언제나처럼 늘 그렇듯 자연은 누가 보든 말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초록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고 깊이 있는 초록을 향해 성장하고 있다.

언제 피어났는지 모를 들풀들 속에 노란 민들레가 피었다가 홀씨를 만들며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내리는 빗방울은 언제나 규칙적으로 동그랗게 동그랗게 퍼지다 사라져 간다.

어디선가 삐유삐유 가냘프게 우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새는 비를 피하지 않는다지. 비 오는 날에는 비를 맞으며, 바람 부는 날에는 바람을 맞고, 뜨거운 태양아래서도 그 태양을 견디며 그렇게 그들의 삶을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고 보니 어찌 새뿐이랴~ 

나무도, 꽃들도.... 자연은 늘 그렇게 살아간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연하게 살아낸다.


토독토독 투명한 우산 위에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토닥토닥 나를 위로해 준다.

내 마음속 미세먼지도, 근원적인 불안도, 알 수 없는 우울도 내리는 비와 함께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다.

삐삐삐 삐삐삐 삐익삐익 아까부터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오다 멀어져 간다.

이 비가 저 어린 새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았으면....



어느새 바지 밑단의 색이 비를 머금어 짙어져 있다.

금방 끝난 나의 짧은 산책 시간.

그래도 이 짧은 산책이 나를 기운 나게 한다.

나를 버텨내게 한다. 그렇게 몇 주의 가라앉음에서 헤어나게 해 준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짧은 글을 발행할 수 있었다.

비록 보잘것없고, 아무 감흥 없는 글일지라도 그 글을 써 내려갈 수 있고, 당당하게 보일 수 있는 한 줌 용기가 생겨났다.


멀리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온다.

오늘이 비 오는 토요일이어서 감사하다.

해가 쨍쨍한 날이었으면, 어쩌면 이번 주도 나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것만 같다.


띠링띠링 띠링 도어벨 소리와 함께 우산을 접으며 아이들이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내 고요한 세상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렇게 또 내게 남은 봄날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하염없이 대책 없이 아름답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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