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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토끼 Jun 29. 2024

어느 장마철에 얽힌 이야기

드디어 올여름 장마가 시작되었다.

폭우가 예보되어 있는 올여름 장마....

작년 여름에도 그전 여름에도 분명히 장마철을 보냈으련만, 딱히 기억에 떠오르는 일은 없다.

하지만,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 어느 여름의 장마철을 잊을 수 없다.


단발머리 중학생이던 그해 여름날....

정말이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밤새 비가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창문을 두들기는 맹렬한 빗줄기에 자다 깨어 한참을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다 새벽녘에서야 까무룩 잠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허겁지겁 학교를 갔다.


© vicky49, 출처 Unsplash


다행스럽게도 아침이 되자 비는 멈춰 있었고, 학교 가는 길가에는 어디선가 떠내려온 물건들이 길 여기저기 흙더미와 함께 쌓여 있었다.

교실문을 열자 왠지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군데군데 학교를 나오지 않은 친구들의 빈자리가 보였다.

이번 장맛비로 수해를 입은 친구들이 있다는 알게 되었고, 친한 친구의 엄마가 비에 휩쓸려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친구네 집은 개천이 흐르는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고, 종종 그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친구엄마가 반갑게 맞아주시며 간식을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전이라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순식간에 너무 많이 내린 비에 그만 개천물이 넘쳐 친구네 집으로 물이 삽시간에 들이찼고, 집에 있던 친구 엄마가 변을 당했다고 알고 있다.

친구 엄마의 장례식을 갔었는지 아닌지, 그리고 친구가 그 사건 이후 이사를 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 güzel, 출처 OGQ


내가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여름 장마철에 생긴 이 친구의 비극을 글로 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글이 당시 학교 교지에 실렸기 때문이었다. 

교지에 실린 그 글을 읽으면서 그때야 비로소 나는 왠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한참 민감한 사춘기 소녀였던 그 당시, 누구라도 글을 읽으면 다 알 수 있었을 친구의 아픈 개인사를 소재로 글을 썼기 때문이지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가 교지의 글을 읽었는지, 그리고 그 글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각기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우리는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친정집 근처 은행을 들렀다가 거기서 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친구가 그 은행에 근무를 하고 있었고, 당시 같은 은행에 근무하던 남자 직원과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나는 아직 결혼 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연락이 끊어졌다.


© artsyvibes, 출처 Unsplash


얼마 전, 한 유명작가가 자신의 소설에 전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무단으로 인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결국 그 소설을 출고정지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작가분의 입장글도 충분히 읽었고, 전 여자친구분의 입장글도 세심하게 읽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 작가의 입장도 너무나 충분히 이해가 가고, 또 전 여자친구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글이라는 게 상상력으로 쓰기도 하지만, 결국은 한 사람의 경험을 기반으로 쓰이는 것이기에 주위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글에 버무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어떤 모티브가 비슷하면 그게 바로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게 글이 가진 속성이기도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는 일 없이 그 경계를 넘지 않는 글쓰기가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 aaronburden, 출처 Unsplash



글을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기도 하다. 철없는 중학생 때 나는 대놓고 친구의 이야기를 무단으로 인용했고, 그때 느낀 미안함은 오래도록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 친구가 과연 그때 내가 쓴 글을 읽었는지, 그 글을 읽고 상처를 받았을지 언젠가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꼭 물어보고 사과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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