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하면 문구점 주인장도 같이 방학모드에 들어간다.
아침에 늦게 문을 열고, 저녁에는 일찍 문을 닫는다.
그리고 가게에 얽매여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모처럼 누려본다.
서울에 사는 딸 집에도 다녀오고, 서산 바닷가 마을에 자리잡은 남동생네 다녀오기도 했다.
무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도서관을 열심히 오가며 추리소설에도 푹 빠져 지냈다.
하지만 여름 방학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라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2학기 준비도 해야 하기에 미리 물건을 주문하고, 진열해 놓아야 한다.
그래도 금요일 오전인 지금까지는 한가하고, 여유롭기만 하다.
아침 출근길,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해 한 손에 들고 한여름 더위와 맞서 본다.
올여름은 정말 지독히도 더웠고, 아직도 덥다.
예전에는 8월 15일만 지나면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지고는 했기에 그때까지만 견디면 이 여름도 지나가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정말이지 열대야가 꺾이지 않는 길고도 긴 여름이 되었다.
가게문을 연 뒤, 축구공이랑 물총이 걸려 있는 이동 진열대를 밖으로 꺼내놓고, 비눗방울도 밖에 진열해 놓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바람이 살랑 불어온다.
어라? 바람이 시원하다? 분명 어제까지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었는데....
바람이 바뀌었다!
기온은 아직까지 열대야가 지속되지만, 뭔가 바람의 온도가 낮아졌다....
그렇구나. 제 아무리 더운 여름이어도 이제 그 끝자락이 보이는구나....
기분 좋게 부는 선선해진 바람에 온몸을 맡기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희고 쫀쫀한 뭉게구름이 걸려 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기분이 좋다!!
커다란 말벌 한 마리가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으로 순식간에 들어왔다.
양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불을 껐다.
몇 번의 경험으로 불을 켜 놓으면 그 불빛 때문에 벌이 잘 나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벌은 한참 동안을 유리 통창에 앉기도 했다가, 천정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가 앉아서 쉬기도 했다가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 나간다는 걸 안다.
나이를 먹는 장점 중 하나, 경험치가 쌓여 어떤 일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계속 퇴로를 찾지 못해 빙빙 돌던 말벌이 지쳤는지 불 꺼진 LED등에 앉았다.
긴 봉으로 벌을 살짝 건드렸더니 휙 돌던 말벌이 갑자기 출입문 밖으로 쏙 날아가버렸다!!!
다시 불을 켜고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요즘 다시없을 불황을 맞고 있다.
그 끝이 언제쯤 일지, 버티고 견디면 되는 일인지 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결심이 자꾸 흔들려 애써 굳힌 나의 결정마저 균열이 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 경보,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드디어 개학을 맞이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덩달아 방학모드로 돌입했던 나의 글쓰기도 같이 개학을 맞이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경험치가 쌓여가도 어쩐 일인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건 아직까지도 어려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