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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상스 Jul 15. 2024

짧은 소설 - 완행버스

  붕어 모양의 검은 금형틀이 뒤집힌다. 목장갑을 낀 손이 대오를 훑고 지나간다. 쇠막대 끝에 달린 갈고리에 닿자마자 붕어 틀 주둥이가 후딱 뒤집힌다. 한 발짝 떨어져서 천막 아래를 진중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내 두 눈동자도 위 아래로 정신없이 뒤집힌다. 검은 붕어 틀이 퍼런 가스불에 익으면서 달달거린다.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밀가루 반죽이 덕지덕지 뭍은 앞치마를 걸친 아저씨가 빵모자 챙을 들고 나를 흘끔 본다. 무안해진 나는 주머니를 뒤진다. 천 원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들이 집혀 나온다. 먹느냐, 마느냐. 현재의 나로서는 결코 쉬운 고민이 아니었다. 만원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붕어빵과 마주치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이천 원에 열 개’라고 써 붙인, 이례적인 가격의 붕어빵을. 붕어빵장수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입주름 사이로 성긴 턱수염이 파묻힌다. 허허 참,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신기해서요. 붕어빵 만드는 거 처음 봐요. 흘러나오려는 침을 쓰읍, 들이마셨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두 마리 더 줄 테니까 가져가. 나도 너만 할  땐 그 정도는 먹어야 기별이 갔어. 나는 주저 없이 이천 원을 아저씨한테 내밀었다. 

  붕어빵이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가슴에 품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만한 가격에 이 정도 양이면 월척이었다. 당분간 배가 든든할 것이다. 역시 서울 인심은 지방 인심하고 상대가 안 되었다. 아저씨의 사람 좋은 미소에 마음은 이미 배가 불렀다. 붕어빵을 하나를 집어 한 입 물었다. 바삭한 표면이 부서지고 보드라운 속살과 단팥이 입안을 맴돌았다. 맛이 좋았다. 탈이 날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팔목에 감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네 시 반이었다. 서울 봉천동에서 이곳 내판리까지 오는데 여섯 시간 반이 걸린 셈이었다.     

 오늘 아침, 고시원 옥상에서 두 팔을 벌리고 부족한 비타민D를 보충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이 온 도시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임용고시고 나발이고 무작정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옷장을 열고 옷가지들을 꺼냈다.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다. 볼펜이나 가위 따위 등이 담긴 컵을 뒤집었다. 은빛 나는 동전만 골라 호주머니에 넣었다. 가진 돈이 얼추 이만 원은 되었다. 오늘 기필코 바다를 보고 오리라. 회는 못 먹지만 마른 오징어라도 씹고 오리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어떤 표를 살까 고민했다. 마침 대천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팔천 원이었다. 왕복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빈틈없이 준비된 자여, 여행을 떠나지 말라. 여행은 빈틈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젊음을 밑반찬 삼으면 되는 거였다. 버스가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거센 역풍을 집어삼킬 듯 입을 벌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잠시 정차한 휴게소에서 발생했다.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화장실 입구 옆에서 파는 핫바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검정 유니폼을 입은 판매원은 자신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수십 개의 손아귀마다 차근차근, 하지만 번개같이 핫바를 쥐어주었다. 빙빙 돌아가는 대형 전자레인지를 넋놓고 보던 나도 어느덧 그에게로 팔을 뻗고 있었다. 케첩이 담뿍 묻은 핫바를 보니 식욕이 감돌았다. 그런데 식욕뿐만 아니라 다른 욕구도 치밀었다. 버스에 하나 둘 씩 사람들이 올라타고 있었다.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멀쩡한 핫바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다시금 화장실 안으로 달렸다. 변기에 앉자 핫바 모양의 배설물이 머리를 내밀었다. 시계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주차장으로 달려 나갔을 때 이미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순간 무인도에서 지나가는 배를 보고 펄떡펄떡 뛰었던 어느 영화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신이 났다. 아주 잠깐. 막막하고 알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는 앞길에 대한 젊은이다운 반응이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터벅터벅 주차장을 걸었다. 가장 가까운 버스의 앞문을 두드렸다. 가스를 내뿜고 문이 열렸다. 선글라스를 낀 기사에게 그 당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질문을 했다. 

 “여기가 어디에요?”


 그래서 온 곳이 여기 충남 연기군 내판리였다. 오는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고속도로를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신탄진 휴게소에서 관광버스를 탔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를 헝클고 바지에 검댕이를 묻혔다. 등산산복차림의 아주머니들이 맨 뒷좌석에서 목석처럼 앉아 있는 나에게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댔다. 내리자마자 시내버스 정거장이 보였다. 무작정 처음 오는 버스를 잡아탔다. 완행버스는 세월아 내월아 하며 산이고 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졸음이 올 수밖에 없었다. 눈을 비비며 버스에서 내리자 조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드넓게 펼쳐진 대지에 고만고만한 건물들의 숫자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나는 빈 종이봉투를 구겨 전봇대 아래 쓰레기꾸러미들 속으로 쑤셔 넣는다. 읍내라고 불리는 곳인데도 대부분의 공간이 나대지였다. 한 발짝마다 건물이 솟아 있는 서울에 비하면 이곳은 여백의 미가 심하게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우선 다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툭하면 가지 길이 나왔다. 도전정신으로 가지 길에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촘촘하게 모가 심겨진 드넓은 평야를 마주쳤을 때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나왔다. 오십 미터 당 하나씩 가게가 보였다. 정미소와 몇 개의 구멍가게를 지나쳤다. 농협과 그 옆에 하나로 마트가 붙어 있는 건물이 내가 본 가장 큰 건물이었다. 석양이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다리에 점점 힘이 풀렸다. 그 때 지나가던 오토바이 한 대가 내 옆에 멈춰 섰다. 풍성한 파마머리에 흰 머리띠를 한 여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못 보던 오빠네. 요 앞에 있는 별다방 미스 방이에요. 놀러와.” 

 매연을 내뿜으며 오토바이가 내달렸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청치마 뒤로 분홍색 보자기가 덜컹거렸다. 그녀를 불러 세우기 위해 한 손을 머리까지 올렸던 나는 짐짓 오기가 치밀어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서 오토바이 얻어 타는 건 왠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경운기를 몰던 할아버지가 이 길을 주욱 따라서 조금만 가면 내판리 기차역이 나온다고 했다. 주욱 따라서 조금만 가면…….       

 내 입김이 서린 유리문너머로 본 가게 안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치킨캐슬’이라 써 있는 입간판을 보고 나도 모르게 멈춰 섰던 것. 붕어빵을 다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뱃속이 요동쳤다. 치킨이 살고 있다는 성은 겨우 이십 평 남짓한 가게였다. 긴 테이블 하나와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두 개. 장미가 그려진 벽지. 벽에 못박힌 선반 위에 손바닥만 한 텔레비전 하나. 그 외에 뭐가 더 필요한가, 묻는 듯 가게 안은 간단하기 그지없었다. 먹고 죽자. 이왕 죽은 귀신 되는 김에 때깔이라도 좋아보자.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닭기름 냄새가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었다. 앞치마를 두른 것으로 보아 사인용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여자가 주인인 듯 보였다.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자 반사적으로 여자의 입에서 오서오세요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두리번거리던 시선은 목소리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의 얼굴은 앳돼 보였다. 기껏 해봐야 이십 대 끝줄쯤 되었을까. 화장기 없는 얼굴이 어울리는 유형의 여자였다. 미소가 지어지는 한편 낭패감이 몰려왔다. 젊은이 특유의 넉살이 먹혀들지는 의문이었다. 메뉴판에 적힌 메뉴는 두 가지였다. 거두절미, 후라이드 만원. 양념 만 이천 원.

 “저기요 아줌, 아니, 이모, 그냥 누나라고 할 게요. 누나, 날개 두 짝 떼고 후라이드 치킨 팔천 원에 먹으면 안 될까요?”

 서울에서 철면피로 생장한 지 언 이십 몇 년 동안 이렇게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적은 처음이었다. 피식 웃는 여자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고향에 계시는 할머니의 푸근했던 얼굴이 그리워졌다. 앉아계세요.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벙벙한 어안으로 여자가 엎드려 있던 테이블에 앉았다. 의자에 남아 있던 여자의 온기가 내 얼굴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주방이 바로 보였다. 여자가 서 있는 공간은 주방 겸 카운터였다.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는 팔은 가늘었다. 기름이 찬 가마솥 안에 닭고기를 하나씩 집어 조심스럽게 빠뜨렸다. 그 천천한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나는 손에 턱을 괴었다. 안 먹어도 좋으니까 여자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었다. 

 치킨이 담긴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특수 제작한 그릇인가 보았다. 그릇 안에 담긴 치킨 조각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머릿속으로 치킨조각들을 조립해 보았다. 완성된 짐승의 형상을 짐작해 보건데, 일단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양 쪽에 두 개의 날개를 달아 하늘을 맹렬히 날 수 있고, 거대한 부피의 몸통을 가졌다. 신화에나 등장할법한 그리폰쯤 되는 짐승의 모습이었다. 튀김옷의 색깔이 가감 없이 모두 일정하게 노르스름했다. 더 놀라운 것은 맛이었다. 아무리 씹어도 퍽퍽한 구석이 없었다. 입 안에서 부드럽게 찢어져 저절로 목으로 넘어갔다. 갈 곳도 없어진 마당에 최대한 시간을 끌며 먹으려고 했었지만,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식욕이 시키는 대로 입 안에 고기를 우겨넣었다. 먹고 또 먹어도 그릇은 줄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가게는 점점 손님들이 들어찼다. 듣자하니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공사장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소를 키우는 농부들도 있었다. 경운기를 몰던 할아버지도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에게 똑같이 상냥한 여자를 보고 묘한 질투심이 일기도 했다. 포동포동하게 얼굴 살이 오른 한 아이가 혼자서 가게 문을 열었다. 붕어빵이 담긴 종이봉투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가게 앞을 서성이던 어떤 아저씨가 나 먹으라고 이거 줬어. 엄마.”

 아이가 한 말의 마지막 단어를 듣고 사레가 걸렸다. 켁켁거리며 가슴팍을 쳐댔다. 

 “또? 매번 고마워서 어쩌니.”

 그 아저씨에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여기서 아저씨가 장사하던 곳까지의 거리를 떠올리는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늦은 밤이 되자 가게는 만원이었다. 따로 들어왔지만 다들 면식이 있는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웃고 떠들었다. 나도 이곳에 단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릴지라도……. 다음번에 찾아오게 될 기회가 온다면 그때도 고속버스가 아니라 완행버스를 타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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