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상스 Nov 28. 2021

낙서문학 1

아버지란 이름의 고기

  당신을 부정하는 것으로 내 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나는 있고 당신에겐 없는 것들. 당신과의 교집합을 지워내는 일이 아마 그렇겠죠. 당신과 나는 적대관계여야 합니다. 물론 슬쩍 자리를 채울 때가 있으시겠지요.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당신이란 무게는 어찌 이리 무거운가요. 당신을 믿습니다. 화신이 되어주세요. 내 모든 경멸을 오롯이 받으세요. 당신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요. 다행일까요. 당신의 부재가 미친 듯이 느껴집니다. 그것이 당신의 부정인가요. 당시 당신은 화려했어요. 차라리 악몽에나 등장하지 그랬어요. 당신이 부려놓고 간 빈자리가 자꾸만 신호를 보냅니다. 내가 공들여 바쳤던 경멸을 비웃듯이. 11시 각도로 그림자가 벌떡 섭니다. 핏줄이 율법처럼 단단하게 제 몸을 휘감고 있어요. 눈을 감고 있다고 내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모르는 건 아니에요. 당신은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었죠.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어요. 뒷골목 고양이들을 차례차례 사냥한 뒤에 유유히 조깅을 했죠. 한번 문 먹이는 놓치는 법이 없었어요. 할짝할짝. 비명 소리를 빨아댔어요. 그게 먹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는 귀를 막아야 합니까. 질질 흘리는 입을 막아야 합니까. 나는 울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지켜야 할 시간들이 있습니다. 입술을 깨물어 마시며 당신이 하지 못했던 그 일을 해내야 합니다. 처박혀서 나오지 않겠다면 화신이 되세요. 악몽을 지배해 주세요. 이불 속에서 바들바들 떨었던 당시의 나로 언제나 되돌려 놓으세요. 참 지긋지긋합니다.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해 당신을 노려보는 겁니까. 당신을 끝까지 주시하기 위해 지켜할 것들이 있는 겁니까. 언제까지 그 안에서 멍하니 있을 건가요. 생각을 하세요, 생각. 사실, 당신은 좆도 아니었어 시발. 목소리와 팔뚝이 굵어져도 하지 못했던 말. 당신은 여전히 나를 장롱 속에 가두려하겠지. 종아리 하나가 장롱 밖에 삐져나와 있어요. 밥알들을 눌러대던 숟가락처럼 차갑게 당신을 눌러드리지요. 당신을 거꾸로 매달아놓고 차분히 수학문제를 풉니다. 당신의 길이를 재는 건 시시한 일입니다. 삼각자와 족집게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을 수용하는 법은 이미 익숙해요. 생각해봐요. 생각이란 걸 해봐요. 공예품이 될 거예요. 당신은. 삽입하고 수정할 줄은 아시겠죠. 자신이 몇 번째 구석에 있는지 세어보세요. 손가락은 있으시겠죠. 한 번 문 먹이는 놓치는 게 아니잖아요. 지가 진돗개인지 들개인지도 모르는 병신새끼. 칠칠치 못한 새끼. 열렬히 충성해드리지요. 하나하나. 구멍을 뜯고 씹고 음미합니다. 얼어 죽은 악의 화신에게 도저히 매료되지 않네요. 이젠. 귀마개가 필요하지 않아. 당신들을 수집할 아주 커다랗고 튼튼한 장롱이 필요할 뿐.     

    

  화분에 박힌 각목처럼 영원하기를. 그렇게 알콜에 젖어 평생 생고기가 되시기를. 당신의 주검 위에 모눈종이를 덮어 거리를 가늠합니다. 당신의 사타구니를 말씀으로 아로새겨 통째로 각얼음판에 넣겠습니다. 


  시뻘건 나침반이기를. 당신과의 교집합을 믿습니다. 당신을 움켜쥐기 위해 밤마다 캐치볼을 했습니다. 욕조 물에 몸을 담금질하며 방구석에 핀 곰팡이 위에 코를 박고 비틀거리는 날개미를 위해 창문을 열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채 당신을 내려다보며 바득바득 채찍질 했습니다. 당신으로 말미암은 여백을 찾고 또 찾습니다. 


  접이식 나무의자, 맥주병, 프라이팬, 소화기, 유리파편과 피웅덩이, 베게 밑 식칼, 삼각자와 각도기, 16번의 망치질, 이불봉분, 구멍 난 문짝, 구멍을 덮는 태양같이 검은 눈, 쓰리쿠션 당구공, 마이크커버, 책받침의 날카로움, 연필심으로 눈에 점찍기, 앞차고 아래막기, 풍성한 머리채, 올챙이 얼음, 강아지 물감, 깍둑썰기, 침묵으로 달리기, 

  나는 멈추지 않습니다. 더 강한 채찍질을 물려받았습니다. 

  

  당신은 가루가 되지 않습니다. 염은 염병할 염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연옥의 주인입니다. 침착하게, 배운대로, 깍둑썰기를 합니다. 숨 쉬는 생고기, 말을 묶습니다.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구두주걱. 피가래. 오뚜기샌드백그림자. 한물아비. 당신은 타오릅니다. 영원히 생생하고 싱싱하기를.


작가의 이전글 ‘감각’은 사유 없이 느낄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