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락사스 신과 아타락시아 연결고리를 찾으며
실로 유레카를 외칠 만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흘러 넘치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깨우쳐 '유레카'를 외치며 벌거벗은 몸으로 뛰어 나왔듯, 며칠전 나도 지난 40년 해묵은 궁금증을 해소했다.
고교시절 '데미안'을 처음 접하고 아래의 문장을 암송해, 딸들 생일 손편지에 인용하곤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알에서 나온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알을 깨고 나오는 새의 모습, 파괴를 통한 창조에만 집중하느라 아브락사스의 의미는 헤아리지 않고 그냥 외웠을 뿐이었다.
최근 이혼후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메이는 친구에게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쾌락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건네다 문득 고교시절에 단순 암기로 배운 쾌락주의 철학, 에피쿠로스 학파를 떠올렸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마케도니아 정복군주 알렉산더 왕이 페르시아 제국과 인도, 이집트를 점령한 후, 점령지 동방 문화가 자연스럽게 지중해 문화권에 전파되어 생겨난 헬레니즘 시대에 번성했다고 한다.
전 세기 이데아론을 설파했던 플라톤과 달리, 에피쿠로스 철학은 지극히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는 인간의 욕구와 그 만족도인 쾌락을 3단계로 구분했는데,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를 1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쾌락이지만, 2단계는 성욕과 소비욕 같은 것으로 절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채우려고 할수록 욕심이 자라나 끝까지 채울 수 없고, 쾌락만큼 공허도 깊어진다고 생각했다.
쾌락주의 학파로 불러진다고 해서 모든 쾌락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방탕하고 일회적인 쾌락을 멀리하고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추구했다고 한다. 3단계 쾌락으로 부와 명예, 권력욕 등을 지칭하고, 이를 배제하는 삶만이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된 평안한 마음 상태, '아타락시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자기 신념대로 노예, 창녀 등 비천한 이들과 어울려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철학을 가르치며 살다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추구했던 아타락시아 세계관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그 '아브락사스' 신이었다.
40년전의 아브락사스 신과 아타락시아 세계관의 연결고리를 찾으며, 배움과 만남에는 어떤 형식이라도 관계치 말고 추구해야 함을 깨닫는다.
박노해 시인은 그 지평을 넓혀 '인생길에도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고 노래했다.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은 온통 사람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