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내가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했던 그날부터 나는 특별한 줄 알았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남들보다 특별하길 바랬던 것 같다. 노력이라는 것은 특별하지 못한 사람들이 꼭 해야 되는 그런 성가신 일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쉬운 노력으로 얻은 결과는 이렇게 오만과 자만을 낳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깔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다들 아등바등해 봤자 내 시험 점수가 가장 높았고 모든 선생님은 나를 예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미술 선생님은 내 그림을 대신 그려주기도 했고 야자를 안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올라갈 때는 선생님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반을 골라보라고 반 편성표를 먼저 보여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수행평가를 합치면 1등을 놓칠 때도 있었지만 체육, 음악, 미술 등 예체능 과외까지 받아가며 노력하는 친구들을 수행평가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처럼 그렇게까진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잘 몰랐다. 적당한 노력으로 너무 좋은 결과를 얻어버렸다는 것을. 모든 것에 딱 그 정도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기계공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생인 나를 받아주는 괜찮은 대학은 두 곳 밖에 없었고 배치표를 확인해 보니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점수였다. 비록 문과였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교차 지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내가 밤을 새서 몰래 공부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PC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아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조퇴를 일주일에 한두 번은 했던 것 같다. 조퇴를 하자마자 PC방으로 달려갔다. 성적보다는 리니지 아이템에 관심이 더 많아졌고 심지어 수능 바로 전날에도 친구와 PC방을 갔을 정도였다.
그렇게 수능은 끝이 났고 나는 원했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저주 걸린 20대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