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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뜐뜐 Aug 19. 2021

합리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운전을 하다가 잠이 왔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익숙한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광고 또는 협찬을 해준 회사들을 맛깔나게 불러주며 감사 인사를 하고 있었다. 뒤이어 광고에서는 익숙한 공인중개사 학원, 수입 자동차, 이수근의 대리운전 등 여러 광고가 흘러나왔고, 그중에서 곰표 밀가루의 튀김 소리는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밀가루는 역시 곰표, 닭고기 하면, 하 하림? 갑자기 하림이라는 브랜드가 생각났다. 닭을 만드는 회사인가 아니면 키우는 회사인가 잠시 헷갈렸지만 중요하지는 않았다. 곰표의 튀김 소리와 하림의 닭이 만나 치킨이라는 새로운 파생 상품을 만들어 냈다. 순간 치킨이 먹고 싶어 졌고, 치킨 브랜드를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브랜드가 떠오르며 수많은 정보가 내 머릿속에 존재했다. 갑자기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그냥 매번 먹던 굽네 고추 바사삭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났다.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 전화주문 등. 어떤 경로로 주문할지 선택을 내려야 했다. 어떤 채널에서 신규로 가입하면 5,000원 할인 쿠폰을 준다 했는데, 하지만 나에게는 신규 가입할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매번 사용하던 쿠팡이츠로 주문을 했다.




정보가 이렇게 넘쳐나는 시대. 넘쳐나는 정보를 내가 편한 대로 듣고, 듣고 싶은 대로 해석하고, 해석한 대로 믿고 산다. 정보는 이렇게 가공되는 과정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정보는 이렇게나 주관적이지만 이것을 객관적이다고 믿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많은 정보 속에서 헤매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개가 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내가 인지 하지도 못할 정도의 수많은 광고가 나에게 노출되어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고, 생각할 시간도 한정적이며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행동 양식을 본인의 생각이라 착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수많은 정보에서 매 분, 매 초 선택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릴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저 수많은 정보에 길들여진 습관대로 반응할 뿐이다.


길거리를 조금만 거닐어도 수많은 간판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먹고 싶지도 않았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갑자기 먹고 싶어 지는가 하면,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홍루이젠 간판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핸드폰을 꺼내 홍루이젠을 검색해보니, 대만 샌드위치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스킵하고,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어제 결제하려고 담아뒀던 네이버 장바구니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인터넷의 모든 배너 광고에는 홍루이젠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마켓 컬리에서는 새벽 배송으로 홍루이젠을 배달해준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마켓 컬리에서 시킬 제품이 있었기에, 장바구니에 홍루이젠을 담기 시작한다. 무료 배송을 위해 이것저것 담다 보니 어느덧 카트는 가득 찼고, 유기농을 추구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내 카트는 모든 유기농 제품들로 가득 찼다.


거실 TV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곰이 터전을 잃었고, 심지어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은 내전으로 인해 며칠을 굶어 죽어가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오늘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가 나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고, 다음 달 카드값이 얼마나 청구될지가 나에게는 가장 큰 걱정이다. 카드값을 생각하다 갑자기 마켓 컬리에서 잔뜩 주문한 유기농 제품들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고민하지 않고 소비했던 나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며 굳게 다짐을 하고, 핸드폰을 다시 꺼내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인스타그램에는 주변 지인들의 여름휴가 피드가 넘쳐났고, 8월이 되도록 아직 여름휴가를 예약하지 않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일찍 예약했다면 저렴했을 것 같다는 자책과 함께 익스피디아에 로그인을 한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인천의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을 검색했고, 기본 디럭스 룸도 후기가 좋았기에 그렇게 디럭스 룸으로 선택했다. 다음 버튼을 클릭하고 예약 페이지로 넘어가니, 갑자기 프리미어 디럭스 룸 타입이 나타났다. 가격은 4만 원 차이지만 룸 컨디션이 더 좋아 보이며 공간 또한 넓어 보였다. 약간의 고민은 들었지만 그래도 4만 원에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하니, 주저 없이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었다. 결제를 하고 나니 나 자신이 뿌듯해졌다. 업그레이드된 방에서 호캉스를 보낼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예약을 끝냈으니 이제는 호텔 수영장에서 입을 수영복이 필요했다. 나는 수영은 못하지만 그래도 수영복은 입어야 한다. 네이버 검색창에 남자 수영복을 검색했다. 기왕이면 나이키나 파타고니아 같은 브랜드가 좋을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수영복을 발견하고 가격비교를 시작했다. 해외 직구 그리고 국내 배송 제품이 있다. 국내 배송 제품의 가격이 30% 이상 비쌌지만, 혹시나 해외 직구 배송이 늦어져서 제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휴가까지 3주 넘게 남았지만, 30%가 더 비싼 국내 배송 제품으로 결제를 하였다. 이제 수영복까지 준비가 되었다. 수영복을 준비하니, 몸에 바를 선크림이 필요해졌다. 아니, 선글라스도 필요하고 모자도 필요하고, 나는 수영을 못하기에 튜브도 필요했다.


이렇게 나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착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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