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를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박기영
승부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승부에는 반드시 결말이 있게 마련이니까.
영화는 맨발 감독과 영화의 사랑, 맨발 감독과 린타로의 사랑을 승부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승부는 역시 혼자서는 할 수 없는지라 도입부의 무사의 청춘은 그저 각본으로 남겨져 있었다. 린타로의 타임워프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이 뜨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린타로의 등장과 함께 무사의 청춘이 시작되고, 맨발과 린타로의 청춘도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내 린타로는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임이 밝혀지고, 미래에는 영화가 없다는 사실 또한 밝혀진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결국 맨발은 둘 모두에게서 도망을 친다. 승부를 겨루지 않으면 패배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린타로는 맨발을 쫓아간다. 감독님이 아니면 안된다고, 네가 아니면 안 된다고, 언젠가 맨발이 린타로에게 말했던 그 말을 이번에는 린타로가 맨발에게 건넨다. 그렇게 돌아온 맨발은 한가지 타협안을 생각해 낸다. 베지 않고 끝내는 것이다. 사요나라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축제 당일, 무사의 청춘, 그리고 린타로와의 작별을 앞둔 맨발은 결심하고, 뛰어나간다.
베는 것은 고백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칼끝을 너에게 전달하겠다.
이보다 멋진 사랑의 외침이 있을까. 축제가 끝나면 무사의 청춘은 사라지고, 린타로도 미래로 돌아가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맨발은 도망치지 않고 칼을 들고, 린타로 역시 자신의 마음을 칼로써 전달한다. 바이바이와 사요나라를 말했지만 두 사람의 인생에서 서로가 지워지는 일은 결코 없을 듯하다. 나는 이 두 사람의 용기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오늘이 지나면 영영 볼 수 없음에도 좋아한다 고백하는 용기.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에 대한 사랑도 완성해 나가는 두 사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결국 칼을 휘두르지 못한 어느 여름날을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맨발을 응원하게 되었다.
10년 전 이맘때쯤 나는 일본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야말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늦어 있었고, 결국 칼을 휘두를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그 사람과 멀어졌다. 그로부터 1년 후 귀국을 하루 앞둔 날 다시 그 사람을 만났다. 그때는 상대방이 칼을 건네주었지만 나는 결국 칼을 뽑지 못하였다. 승부를 겨룰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내일이면 안녕이니까. 그렇게 나는 도망쳤다. 사요나라도 말하지 못하였다.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일본에 갔을 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친구로서, 나를 응원 해 주었고, 나는 앞으로는 상대가 무엇이든 도망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 후로 많은 것들과 승부를 하게 되었고 때로는 패배하고, 때로는 승리하며 여러 가지 일을 겪어왔다. 그것이 사람이든, 내 앞에 놓인 어떤 문제이든, 도망치지 않고 승부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물론 지금도 칼을 뽑아 들면 두려움에 손이 떨릴 때가 많지만.
생각해보면 인생은 승부의 연속이고 도망과 타협은 언제나 매력적인 선택지로서 우리를 유혹 하고 있다. 이러한 승부 속에 칼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좋은 영화를 만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