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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Feb 05. 2022

7남매의 약속

그 아픈 시간을 되풀이 하지 말자..

목청껏 엄마를 불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내가 어둠이 걷히기 전에 새벽길을 달려왔다고 해도 평소 같으면 엄마가 깨어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수돗가 플라스틱 바가지 밑에 숨어있는 열쇠를 찾아서 문을 열었다.

마루를 가로질러 방문을 살며시 여는데 오랜 세월에 지친 듯 미닫이 문이 버겁다

버긋하게 열린 틈새로 돌아누워 잠든 엄마의 등짝이 보였다.

어젯밤에는 또 무슨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셨길래 아침잠에 빠지신걸까?

일곱 자식 중에 어느 자식이 엄마의 잠자리에 찾아들었음이 분명하다

아흔 셋의 엄마가 그러셨다

부모는 죽는 날까지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는 법이라고.


삭정이 같이 앙상한 엄마의 몸에 이불을 끌어다가 덮어 드리고 주방으로 들어 갔다.

엄마 깨실까봐 조심스럽게 막내동생과 함께 들고 온 바구니를 풀어 냉장고에 정리하는데

일주일 전에 넣어드린 요거트며 주전부리 거리가 그대로 있다.

그나마 껍질째 드시라고 식촛물에 씻어서 넣어둔 사과, 귤은 몇 개 줄어 있었다.

전기밥솥을 여니 언제 지은 밥인지 누렇게 변한 밥 한 주걱이 솥바닥에 눌러붙어 있다.

가스렌지 위에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시래기 된장국이 한솥이다.

국을 자주 끓이기 귀찮다고 잔뜩 끓여놓고 덜어서 드시고 남은 것일텐데

도대체 얼마나 많이 끓여 놓으셨기에 남은 국이 아직도 한가득인 걸까?

엄마를 자주 찾아 보살피는 셋째오빠가 동문들과 일주일 간의 여행을 가신다더니 오빠의 부재가 부른 흔적들이다.


손질 해 온 전복을 참기름에 볶아서 미역국을 안치고 집에서 불려온 서리태를 넣어서 밥도 안쳤다.

그릇마다 들어있는 음식은 몽땅 쏟아서 버렸다.

엄마가 보면 아까운 걸 왜 버리느냐고 화를 내실테니 엄마가 깨어나기 전에 막내와 함께 번개불에 콩 볶듯이 재빨리 처리해 버려야 한다.

냉장고에 조금씩 남아있던 반찬도 정리하고 막내와 내가 만들어 간 반찬으로 채워넣고나니 기분이 좋다.

그리고 눌러 붙어 있던 밥에 드시다 남긴 고등어 토막을 비벼서 메리에게 갔다.

메리는 15년째 시골집을 지키고 있는 누렁이다.

적막한 집을 지키다가 어쩌다 만나는 가족들만 보면 좋아서 펄쩍펄쩍 뛰어 오른다.

우리가 오면 별식이 있다는 걸 아는 메리는 막내와 내 손을 번갈아 쳐다보며 꼬리를 흔든다.

내가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밤식빵을 한움큼 떼어 주자 얼른 받아서 구석진 곳에 숨겨두고 다시 돌아와서 나를 쳐다본다.

더 달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준 것은 아꼈다가 이따가 먹을 것이고

지금 내 손에 있는 밤식빵에 둔독을 들이는 것이다.

그 눈빛이 어찌나 간절한지 한움큼 더 떼어주고 만다.

글겅이로 메리의 몸도 긁어주며 혹시 진드기가 붙어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메리집도 청소 해 주고, 엄마 잘 지켜줘서 고맙다고 머리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엄마가 문을 열고 빼꼼히 밖을 내다 보신다.

큰딸과 막내딸을 보신 엄마의 얼굴이 금방 환하다.


서둘러서 아침밥상을 차려 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추우니 식탁보다는 방바닥이 따뜻한 안방에 앉아서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고 싶었다.

엄마는 매운 음식을 못드셔서 모든 음식이 슴슴하다.

무를 채썰어 들깨가루를 넣어서 볶은 무나물이 엄마 입에 맞는 모양이다.

묵은 고사리 삶아 넣고 바특하게 조린 조기살을 발라서 엄마 수저 위에 올려 드리면 얼른 드시고

또 달라고, 밥이 가득 담긴 숟가락을 내밀고 기다리신다

그럴 때 엄마 모습은 아기같다.

엄마는 미역국에 나물반찬으로 아주 맛있게 밥 한 그릇을 거뜬하게 비우신다.

어제부터 막내와 함께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어 온 보람이 있다.


아흔셋의 엄마는 총기가 얼마나 좋으신지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또 소싯적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둘째오빠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은행나무집으로 돈을 빌리러 갔더니 돈은 빌려주지도 않고 돌아서 나오는 엄마 등 뒤에 대고 "지지리도 없는 집구석에서 대학은 무슨 얼어죽을 대학"이냐며

빈정거렸다는 이야기는 나하고 막내뿐만 아니라 오빠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막내와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엄마 그때 많이 속상하셨겠네"라고 맞장구도 치면서.

그러나 그 이야기 최후의 승리자는 언제나 엄마가 된다.

허구한 날 자식들 등록금이 모자라 이집저집 돈을 빌리러 다니고, 시장바닥에서 푸성귀 팔아서 자식들 공부시켰지만 "나는 우리아들 박사도 만들고, 교장선생님도 만들고, 은행의 제일 높은 사람도 만들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엄마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목소리에 힘이 차 오른다.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시려는 엄마를 마을회관으로 모셔다 놓고 막내와 나는 집안 대청소를 시작한다.

집안의 먼지를 떨어내려면 방문과 창문을 있는대로 열어놓고 환기를 시켜야 하는데

겨울날씨에 엄마가 고뿔이라도 걸릴까봐 따뜻한 마을회관으로 피신을 시킨 것이다

정해 놓은 건 아닌데도 막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구역에서 움직인다.

나는 세탁기를 돌려놓고 욕실 청소를 하고 주방정리를 시작한다.

기름때 찌든 후라이팬을 닦아놓고 태우거니 때 묻은 스텐레스 냄비를 닦아서 말려놓는다.

막내는 안방의 이불을 걷어내 빨래줄에 널어 먼지를 떨어서 말리고 방과 거실을 들락거리며 말끔하게 정리정돈을 한다.

집안일을 다 마무리 하고 욕실에 전기난로를 피워 공기가 따뜻해 지면 회관에 가 계신 엄마를 모셔온다.

나는 막내와 함께 늙은 엄마를 목욕 시켜 드릴 때마다

"아, 내가 엄마의 등골을 빼먹고 살았구나" 하는 탄식으로 속울음을 삼키곤 한다.


이렇게 엄마집을 방문하기 시작한지 어느새 3년이 되어 간다.

아흔의 엄마를 더는 혼자 둘 수 없다고 결정하신 큰 오빠가 서울로 엄마를 모셔갔지만 엄마는 서울살이에 적응하지 못하셨다.

높은 아파트에서 밖을 내다보거나 엘리베이터에 타시면 어지럽다 하시며 주저앉으셨다.

친구 하나 없이 집에만 머물러 있는 시간을 숨막혀 하셨다.

석달을 견디지 못하고 큰아들 집에서 도망쳐 나오셨을 때 시골집에서 가까운 세종에 사는 셋째아들이 모셔 갔지만 그 또한 소용이 없었다.

높이 솟은 아파트가 닭장 같아서 싫고, 사람은 발을 땅에 딛고 살아야 한다는게 그 이유였다.
그래서 우리 일곱 남매는 시골집 마당에서 삼결살을 구우며 머리를 맞대고 상의를 했다.

엄마가 마음 편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을 정해 놓고 길을 찾다 보니, 자식이 엄마집을 찾아야 한다는데 마음이 모아졌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7남매가 당번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엄마집을 찾아서 청소, 음식, 목욕을 책임지기로 했다.

대전에 사는 나와 막내는 한팀이 되었다.

다만, 가까이 살면서 항상 엄마를 보살피는 셋째오빠와 올케언니는 당번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매일 한 사람씩 아침과 저녁 문안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나는 매주 수요일 아침 9시와 저녁 9시 무렵에 엄마에게 전화를 드린다.

그리고 가족 대화방에 엄마의 근황을 올린다.

"오늘은 엄마가 마을 회관에서 뽕을 쳐서 5백원이나 따셨다고 기분이 좋으심" 이라던가

"대추나무집 아주머니 생신이라서 오늘 점심은 그곳에서 잘 드셨다 하심" 또는

"엄마가 어제 과식을 하셨는지 속이 안좋다 하시네요, 셋째오빠, 내일 아침에 모시고 병원 다녀오셔야겠어요"

"오늘은 텃밭에 냉이 캐다가 냉이무침 하고 엄마 좋아하시는 도토리묵으로 묵국수 해 드렸어요"라는 등등을 올리면7남매가 다 보고 댓글을 달고, 칭찬도 하고, 같이 걱정도 하며 엄마의 일상을 들여다 보며 산다
우리 7남매는 손도장을 찍으며 약속을 했다.

엄마가 건강하게 100세까지 사 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보살피자.

잔병없이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 떠나셨을 때의 그 깊은 슬픔을 잊지말자.

아버지와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자책했던 그 시간을 되풀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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