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부모에게 설빔을 해 드리는 풍경
설을 앞두고 작은딸이 남편 옷을 한 벌 사가지고 왔다.
옷뿐만이 아니라 등산화까지 사 온걸 보니, 신발장에 넣어 둔 아빠 등산화가 낡은 걸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작은딸은 교사가 되던 해부터 명절 때마다 아빠에게 꼭 새 옷을 사 입혔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사다 주는 대로 입던 남편이 해가 거듭 되면서 "무슨 옷을 그렇게 철철이 사들이느냐고, 그만 사라"고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작은딸이 서운한 듯한 눈빛으로
"내가 선생님이 되면 제일 먼저 아빠에게 좋은 옷을 사 드리고 싶었어요. 이건 사치가 아니라 자식 셋 키우느라 고생하신 아빠에게 드리는 제 보답이에요."
그 뒤로 남편은 자식들이 해 주는 소소한 선물에 그 어떤 사설도 붙이지 않았다.
그 작은딸이 이번 명절에도 남편의 새 옷을 사 왔는데 바짓단을 줄인다는 게 그만 깜빡 잊고 있다가
작은 설날에서야 생각이 났다
명절 전날이어서 수선집이 문을 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남편 바지를 가지고 수선 집으로 달려가 보니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수선 집 아주머니는 솜씨가 좋아서 유행이 지난 옷을 새 옷처럼 만들어 내기도 하고 손님들이 주문하면 맞춤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시내 의상실에서 맞추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한데 거기에 솜씨까지 좋다 보니 시장 모퉁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도 단골이 끊이지 않는다.
반가운 마음에 “명절 전날인데 일을 하고 계시느냐”라고 여쭈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더니
주인아주머니는 돋보기 너머로 빙그레 웃으시면서
"마무리해야 할 게 있어서 오전에 잠깐 열었다”라고 하셨다
하던 일 끝내고 바짓단을 줄여 놓겠다고 하시기에 바지를 맡겨두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대목을 보려고 목청껏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상인들의 모습에는 활기가 넘쳤다.
생선가게 앞에는 동태포를 뜨고, 떡집 앞에는 설날 아침에 끓일 떡국 떡을 사느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가래떡을 팔고 그 옆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을 뽑아내고
가지가지 떡을 만들어 내느라 떡집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떡을 좋아하는 나는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모싯잎 송편과 떡국떡을 넉넉하게 샀다.
양지머리 푹 끓여 넣고 황백지단 얹어 뽀얗게 끓여낸 떡국은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한다.
그 옆에는 온갖 전을 부치는 전집이 있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진동을 하고 차례상에 올릴 전을 사느라 늘어 선 줄이 떡집 보다 더 길었다.
조상께 올릴 음식은 정성이라는 아주버님의 강요로 우리 세 동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음식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리고 있는데 전 몇가지만이라도 사다가 올리면 일이 줄어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명절에 필요한 준비를 했는데도 눈에 띄는 대로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새 내 손에 든 바구니가 묵직했다.
지금쯤이면 남편의 바짓단을 줄여 놓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느린 걸음으로 수선 집으로 들어서니 웬일로 가게 안에 사람이 여럿이었다.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남매와 그 부모로 보이는 부부까지 한 가족인 듯 보였다.
수선 집 아주머니는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개량한복을 입히고 계셨다.
할머니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그 위에 누비 두루마기까지 입히고 보니 때깔이 참 고왔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신사분이 “어머니 참 고우세요, 아버지도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할아버지 한 분도 할머니와 똑같은 누비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다.
색깔만 다를 뿐 안에 입는 개량 한복과 겉에 입은 두루마기가 명주 비단을 촘촘하게 누벼 고급지고 따뜻해 보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중년의 신사 분을 올려다보며
“살 날 얼마 남지 않은 에미한테 무슨 옷을 또 해 주느냐”라고 타박을 하시자 그 신사분이
“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저에게 설빔을 해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어머니께 설빔을 해 드려야지요. 내년에도 이렇게 어머니께 설빔을 해 드릴게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안에서 큰 울림이 들려왔다.
늙은 어머니 아버지께 설빔을 해 드리는 아들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따뜻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어린 아들딸이 지켜보고 있었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이 자식에게 기준이 되는 순간이다.
아이가 가장 가깝게 그리고 가장 먼저 보고 배우는 사람은 바로 부모다.
부모는 아이의 첫 번째 교육자인 것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효성이 지극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들, 딸은 보고 배운 대로 자라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나는 엉거주춤 수선집 출입문쪽에 서서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지만 추운 줄도 몰랐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마주하게 되는 이런 따뜻한 정경은 나 자신을 안으로 살피면서 보다 성숙한 삶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장바구니를 수선집에 맡겨놓고 나는 다시 시장 옷가게로 내달렸다.
나도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설빔을 해 드리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