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숲에서 빗소리를 듣다
3.
이곳에 온 지 이주일쯤 되었을 때다. 기름진 중국음식이 물리기 시작한 터라 섣불리 식당을 택해 들어가지 못하고 야외에 앉아 식사하는 현지인들의 식탁 위를 힐끗거리며 서성이던 날이 있었다. 한참의 탐색전이 무색하게 성의 없어 보이는 요리에 끌려 골목 끝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기로 된 커다란 사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국물, 손으로 뚝 떼어낸 듯 무심한 하얀 두부 한 덩어리가 전부인 백두부탕. 누룽지 냄새 비슷한 구수한 향이 향수를 자극했다. 내가 그리워할 만한 게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만.
기대하던 대로 담백한 맛이었다. 밥 한 공기와 알싸하게 매운 특제 소스를 얹어 먹으면 고국과 이국의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이주가 더 흘렀지만 내 점심 메뉴는 고정이었다.
이 작은 식당엔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는 2인용 식탁 두 개와 야외에 놓인 캠핑용 식탁 하나가 전부였다. 벽에는 듬성듬성 실제 나무껍데기를 오려 붙인 장식이 투박하게 붙어있었다. 벽지는 녹색도 갈색도 아닌 숲의 색을 하고 있었다. 습한 공기 덕에 진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기가 손님을 맞이했다. 두부콩이 벽 어딘가에서 자라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어 잠깐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자연스럽게 자연과 같은 공간이었다. 공간은 주인을 담고 주인을 닮는다고―
주인아주머니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딱히 긴 말은 건네지 않아 편하다. 내가 자리에 앉으면 미소와 함께 확신에 찬 눈빛을 보내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주문은 간단하게 끝이 난다.
주인아주머니가 쪼르르 주방으로 들어가고 홀로 수저를 정돈하는 동안이 나는 낯설지만 그 기분이 좋았다. 어릴 적, 엄마가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엄마, 밥!’하면 친구의 어머니가 뚝딱― 밥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단 두 마디로 그들이 엄마와 딸인 게 입증되었다는 게 나는 그저 놀라웠다. 그런데 나와 주인아주머니는 그런 간결하지만 깊은 대화를 매일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어둡던 하늘이 밝아졌다. 습한 장대비는 여우비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쏟아붓고 있었다. 쨍쨍한 햇살만큼 따가운 소리가 천장을 뚫고 들어올 기세로 시끄럽게 울려댔다. 열대기후지역인 후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작은 공간 안에서 들으니 더 크게 들려 조금 무섭기도 했다.
주방에서 나의 점심식사를 들고 나온 건 놀랍게도 난하이였다. 이 동네에서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알아 몇 마디라도 나눠본 건 그뿐이었다.
- 야자수 숲에서 듣는 빗소리는 더 요란하지.
그렇게 말하고 난하이는 또 귤꽃 향기를 풍기며 쟁반 위의 음식들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작은 귤 두어 개는 후식이라며 덤으로 주었다. 그리고 먹던 음식들이 놓인 반대 편 테이블에 앉아 귤껍질을 벗겼다. 나는 이런 상황이 어색해 대답 없이 어물정대고 있었다.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난하이가 다시 말했다.
- 야림청우. 이 식당 이름이잖아.
난하이가 가리키는 곳엔 음각으로 한자가 새겨진 목각간판이 걸려있었다. 좀 아련하게 다가오는 그 말을 정확하게 간직하고 싶어 전자사전 앱에서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양각이 닳아 알아보기 쉽지 않은 네 글자의 한 획, 한 획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고 있는데 난하이가 가게 이름이 적힌 냅킨 한 장을 내밀었다.
椰林晴雨 [야림청우]
반할 정도로 멋들어지게 쓰인 글씨체였다. 나도 모르게, 멋지다―고 육성이 터져 나올 만큼. 난하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그만의 웃음소리로 답했다.
난하이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법을 잘 안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동생이 둘 있다는 것과 글씨를 배우던 날에 대한 이야기와 아버지의 묘연한 행방에 대해, 어머니의 메뉴 중 가장 맛있는 음식 '백두부탕'에 대해. 난하이는 시시콜콜하다고 했지만 자기를 표현할 많은 주변인이 있는 난하이가 왠지 멋져 보였다. 난하이의 고향엔 바다가 없다는 것과 그곳을 떠나온 시간만큼의 긴 강이 흐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난하이는 영어로 말하며 중간중간 중국어도 섞어 이야기했기 때문에 내가 내용을 전부 알아들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긴, 같은 언어로 말한다 해도 우리는 말하는 이의 세계를 모두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우린 대화로써의 눈 맞춤과 교감을 하고 있었다. 난하이가 나에게 물었다.
- 너는 혼자 여행을 꽤 오래 하네?
나는 정확히 알아들었지만 알아듣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오래가 아니라 혼자라는 대목에서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언어의 문제든 마음의 문제든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완강하게 말하고 싶었는지 오기 전 여행 중국어책에서 본 문장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게, 말할 일을 기대한 적은 없었는데 말을 연습해 왔네.
- 뚜웨이 부 치이, 팅 부 동. [미안하지만 못 알아듣겠어요]
난하이는 애써 설명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더 해맑게 주름살을 만들며 웃어 보였다. 마치 내 의도를 알아챈 사람처럼 미간을 요상하게 구부렸다 폈다. 앞으로는 ‘뚜웨이부치이’가 아니라 간단히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뿌하오이쓰으’라는 말을 대신 쓰라고 가르쳐줬다.
- ‘뚜웨이부치이’라고 하면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져. 네 잘못도 아닌데 짊어질 필요 없잖아.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 말을 하는 난하이가 문득 어른스러워 보였다. 나는 이제 짊어질 어떤 관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글퍼져 하마터면 슬픈 표정을 지을 뻔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빗줄기 뒤로 숨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문 밖을 바라보았다. 난하이는 그것마저 알아차렸는지 식사를 마쳤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에게 빈 그릇과 함께 떠나겠다는 포옹을 건넨 뒤 나에게는 말을 건넸다.
- 오후에도 서핑하러 올 거지? 우린 리프 포인트로 갈 거야.
- 아니, 나는 오늘 돌아갈 거야.
내가 돌아가는 계획을 세웠던가. 나도 모르게 떠난다는 말을 해버렸다.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에 서툰 나는 우리라는 말로 나를 덥히는 사람을 만나면 꼭 그렇게 의도한 적 없는 반응으로 대꾸하곤 한다. 행여 나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이해심까지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파란 온도의 바닷물이 스스로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고인 듯 떠내려가고 있는, 떠나가 버린대도 누구 하나 눈치챌 수 없는 사람.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혼란스러웠다. 나의 부산스러운 생각들을 알아챘는지 난하이가 물었다. 입에 물고 있던 귤 내음이 질문과 함께 나에게 퍼져왔다.
- 어디로?
대답을 듣는 대신 묘한 기대감이 섞인 미소를 남기고 난하이가 떠났다. 돌아갈 곳이 없는 내 처지를 눈치채고 있던 걸까. 난하이가 빗속으로 들어가는데 야림청우 식당의 독특한 문 장식 때문에 문틈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이 정말 야자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껍게 꽂히는 빗줄기는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 같았다. 야자수 숲에 비가 내리면 요란할 뿐 슬프진 않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걸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청량한 빗속을 뛰어가는데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난하이의 뒷모습은 따스했다.
백두부탕 그릇이 말끔히 비워지는 동안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햇빛이 줄어 좀 더 어두워지기만 한 정오 즈음. 날씨 탓은 아닌데 괜히 신경질이 났다. 우산 없이 첨벙거리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게 찝찝하기도 했고 쓸데없을 정도로 낭만적인 야림청우라는 이름이 콕 박히게 불만스러웠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백두부탕 대접을 말끔히 비운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텅 빈 마음과 공연히 싸우고 싶은 마음이, 거기서 이기고 싶은 욕구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미혼모의 집’같은 구진 이름이 비교 대상이 되었다는 게 야속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야림청우의 주인아주머니, 그러니까 난하이의 어머니가 나의 밥상을 거두며 함박웃음을 지은 순간이 유독 슬펐다. 흠뻑 젖은 돈을 내미는데 난하이의 어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 하오 펑요우.
그 나라 말에 서툰 나를 배려해 아주 쉬운 단어를 골랐음을 알 것 같았다. 좋은 친구.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심정으로 웃음이 해제되어 버렸다. 난하이의 어머니는 파도치지 않는 평온한 바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보통은 엄마라는 존재에 비유하던 시절에 머나먼 침대의 간격 때문에 나는 절대 알 수 없던 감정이었다.
복잡다단한 거리를 공연히 배회했다. 돌아간다는 말의 목적지가 나에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언니와 살던 집 앞에 또 다른 모양의 구름이 생기고 또 지나갔다 나타났다. 반복하다 보면 결국 관성적으로 완료되는 일들이 있다. 언니가 나를 버리고 가버린 것처럼 나는 다시 리프 포인트가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로 돌아와 서 있었다.
- 머리 위로 비친 내 하늘 바라다보며 널 향한 마음을 이제는 굳혔지만
혼미한 정신이 점점 윤곽을 찾아갔다. 멍한 정신과 함께 청각도 열려 밀려드는 노랫소리를 받아들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나올 노래가 아닌데. 너무 뜻밖의 일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이하면 인지감각은 어느 때보다 느려진다. 언젠가 나에게 한국의 올드스쿨을 좋아한다 말하던 카페 사장은 내가 가게에 들르면 종종 한국어 가요를 틀어 주었다. 일층의 언니가 녹음해 대던 그 시절 음악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 후해는 독특한 무드를 자아낸다. 야자수 숲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회고의 순간은 어찌나 비현실적인지. 꼭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다른 시간 안에 끌어다 놓을 수 있을 것만 같다거나 모든 시간들이 실재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을 부른다거나 한다.
해무가 감싸 안은 바위 뒤로 펼쳐진 야자수 숲이 초록장막을 이뤘다. 바다가 유독 푸르러 보였고 나는 마치 야자수 나무 숲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추억하고 있나. 향수일까. 어지러운 마음을 씻어 내릴 파도가 점점 내 안으로 가까이 들이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해 둘 데 없는 손으로 판초를 뒤적여 담배를 찾았다. 휴대용 지포라이터로 간단히 불을 붙여 연기를 뿜는데 저 멀리 아름다운 야자수 숲과 리프를 한 무리의 서퍼들이 돌아 나오고 있었다.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 헤이!
난하이가 요리조리 파도를 다스리듯 롱라이딩하는 모습이 보였다. 보드의 속도가 줄자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난하이가 밟은 파도가 리프와 이어져 부딪히고 튀어 오를 때마다 무지개가 떠올랐다. 나는 질척한 판초를 벗어던지고 여전히 짠물이 밴 슈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무리와 달무리가 옅어지면서 어디선가는 만나고 있겠지. 그 지점이 있다면 나는 거기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리프 포인트로 향했다.
보드를 물에 얹어 바다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기억에 없던 탄생의 환희를 떠올리게 한다. 보드 위에 몸을 싣고 고운 모래가 깔린 후해의 천수를 지나 리프 바닥의 수면을 지날 때쯤 난하이와 후해의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가까워졌다.
- 헤이!
그들이 타고 보낸 파도가 부서져 나를 덮쳤다. 그 물살에 몇 번 통돌이를 당했다. 또다시 하얀 물거품만이 시야를 가렸다. 이번엔 차가운 물의 온도와 그 사이에 스며 윤슬거리는 물살이 감각되었다. 나의 가쁜 숨이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기포가 음률처럼 너울거리는 게 보였다. 수없이 물속에 빠졌지만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얼굴을 쓸어 물기를 털어내고 보드에 가뿐히 올라탔다. 문득 야자나무 숲 속에서 어른거리는 언니의 몸짓을 본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팔을 저어 그들에게로 향했다.
헤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싶었다. 이곳에 좀 더 머물러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더 깊이 팔을 저었다. 난관을 헤치고 라인업'에 도착한 나에게 난하이의 무리가 물방울을 튕겼다. 쏟아지는 물세례에 햇빛이 굴절돼 야자수숲 위로 계속해서 무지개가 떠올랐다.
'라인업 : 서퍼들이 파도를 기다리는 포인트. 파도를 잡기 위해선 파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지점 뒤편에서 파도를 기다렸다가 파도와 함께 속도를 맞춰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