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네모나라로 끌려간 동그라미
학교 주변 숲을 한참 달리던 동그라미들이 팔을 펴 땅을 짚으며 멈췄다. 그 바람에 시내와 수담이도 멈췄다.
“얘들아, 힘드니?”
“아니!”
맨날 산과 들로 쏘다니는 시내는 아니라고 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담이는 주저앉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조금만 더 가면 멋진 곳이 나오는데, 어쩌지?”
동그라미들은 주저앉은 수담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수레를 만들어 태워 줄까?”
뽀얀동그라미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아니, 수담이가 힘들어하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야. 미안, 미안!”
시내와 수담이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한동안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시내야, 수담아, 내가 말해 줄게.”
초록빛동그라미가 할 수 없이 나서며 말했다.
초록빛동그라미의 말에 의하면, 이웃에 있는 네모나라로 끌려간 동그라미들이 수레바퀴로 부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네모나라 근처를 여행하던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이 끌려갔단다. 네모나라는 신분이 엄격하게 나뉘어 있는데, 끌려간 원들은 가장 신분이 낮은 네모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나? 무슨 그런 나라가 다 있어? 빨리 네모나라에 가서 동그라미들을 구해 와야지!”
시내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당장 네모나라로 쳐들어갈 듯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서로 싸우다 보면 네모나라 도형들도 다치잖아.”
커다란동그라미가 시내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아니, 동그라미들이 끌려가서 고생하고 있는데, 네모 나라 도형들이 다칠 걸 걱정해?”
너무나 의외의 대답에 시내와 수담이는 화가 났다.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모나라 도형들도 언젠가는 우리 없이 굴러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야. 방법을 찾게 되면 그곳에 있는 동그라미들이 모두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뽀얀동그라미가 아는 척하며 나섰다. 하지만 시내와 수담이는 의아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시내와 수담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초록빛동그라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모나라로 쳐들어가면 끌려간 동그라미들을 데려올 수는 있겠지만, 구르지 못하는 네모나라 도형들이 결국 또 쳐들어올 테니 전쟁이 계속되겠지?”
“그래, 처음부터 네모나라에서 동그라미나라에 도움을 청하면 좋았을 텐데, 네모들은 왜 그런 생각을 못 하나 몰라.”
뽀얀동그라미가 끼어들자 초록빛동그라미는 말을 보탰다.
“모양에 따라 신분이 나뉘어 있어서 그런지 생각이 꽉 막혀서 사이좋게 도우면서 사는 방법을 모른대.”
시내와 수담이는 초록빛동그라미 말을 듣고, 밝고 행복하게만 보이는 원들에게도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그라미들에게는 수레 만드는 일이 마음 아픈 일이겠구나.’ 수담이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다리를 주무르던 손을 떼며 물었다.
“동그라미들은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우리 동그라미들도 한때는 사이좋게 사는 방법을 몰랐대. 동그라미들은 가까이 붙어도 빈틈이 생겨. 그래서 딱 붙어설 수 있는 네모를 부러워하며 서로 멀리하곤 했대.”
커다란동그라미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가늘게 뜨자 초록빛동그라미가 얼른 이어받았다.
“그러다 동그라미들처럼 사이사이에 채워지지 않는 틈이 있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게 됐대. 그 틈이 있어 오히려 숨 막히지 않는다는 거야.”
“아, 그러다가 다른 도형 아니, 다른 나라의 행복까지도 생각하게 된 거구나.”
“그렇지. 한 단계 더 성숙한 나라가 된 거야.”
초록빛동그라미의 설명에 시내와 수담이는 동그라미나라가 몹시 궁금해졌다. 수담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 사는 마을은 어느 쪽에 있어?”
수담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교 종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다시 교실로 가야 해. 아직 학교가 안 끝났거든.”
뽀얀동그라미가 아쉬워하며 말하자 초록빛동그라미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산을 돌아서면 마을이 나와. 담에 또 보자.”
“잘 가. 수담아, 시내야.”
“또 놀러 와.”
동그라미들이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시내와 수담이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동그라미들이 교실로 향하자 시내는 웃으면서 수담이를 툭 쳤다.
“너 숙제 말이야, 이 동그라미들도 빠뜨리지 말고 모두 다 쓸 거지?”
시내의 말에 수담이는 마음이 가뿐해졌다.
'이제 내 여름방학 숙제는 다 했으니 이제 시내 숙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