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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름 Dec 04. 2020

13. 나의 독서 연대기

  어느덧 휴직 2달째에 가까워진다. 그간은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글도 쓰고 온갖 하고 싶은 것들에 매몰되어 있었지만 이제 다음 주부터 다시 바빠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때문이다. 휴직을 하고 나서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 독서량인데 이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워낙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결국에 향하는 곳은 책장이었고, 이 집는 어떤 책이 있을까 궁금해했다. 그런 모습에 어른들은 알아서 칭찬을 해주었고 그러면 더욱 신나서 취미활동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미취학 아동 시절엔 아파트 단지마다 돌아다니는 책 대여 버스를 통해 엄마가 책을 빌려주셨고, 집마다 아동책 대여 서비스가 유행일 때라 그런 서비스도 이용하여 책 읽기를 즐겼다. 요즘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 책이 훨씬 재미있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써내도 '상상력이니까' 하고 마는 것이다. 어른 책이라면 이 부분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고, 개연성이 떨어지고 하는 소리가 절로 떠오르는데 말이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 


이제 혼자 걸어서 이곳저곳 다닐 수 있게 되고서부터는 아파트 단지와 조금 떨어진 주민센터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그곳은 특이하게 책들이 유리장 안에 들어있었는데, 몇 권 안 되는 책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책에 손을 댈 때 더 신중해야만 했다. 유리문이 어린아이에겐 생각보다 무거워서 유리문 밖으로 한참을 고민한 끝에 문을 열고 책을 꺼냈었다. 그리고 소중하게 안고 뚜벅뚜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고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중2병도 책과 함께였는데. 흔히 중2병이라 함은 내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이 말이 정말 나에게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쉬는 시간마다 읽었는데 이 모습을 보고 훗날 어느 친구는 ‘너 반에서 왕따 아니었어? 그래서 그렇게 책만 읽은 거 아니야?’라는 말을 남겼었다. 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보다 책 읽는 게 더 즐거웠을 뿐이었고 그 시절 아이들의 장난이라곤 유치하게 여겼으니 이보다 확실한 중2병은 없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자 그동안 나의 자랑거리던 독서가 쓸데없는 것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성적을 중시하는 건 이해하지만 고등학교 내에서 독서는 스펙이 되는 책인지 아닌지로 구분되었고,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아 야자시간에 책을 꺼내면 공부 안 하고 딴짓한다고 선생님한테 혼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책이나 읽을 때가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가셨는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가장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할 시기에 생각하기를 멈춤 당하고 문제집만 풀어야 하는 게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실이었다. 그래 놓고 무슨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인물이 된다느니 이런 소릴 할 수 있지. 하지만, 한편으론 그래 공부할 때지. 하며 책을 내려놓게 되는 내 모습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자 별천지였다. 대학교 도서관은 어찌나 크고 높은지 세상의 모든 책을 갔다 놓은 것 같았고 얼마나 뻔질나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려운 만큼 대출만 해놓고 읽지 못하는 책도 많았지만, 내가 다독상을 못 받으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다독상을 받는지 궁금할 정도로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렸다. 생각보다 나보다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성인이 되고 공무원 수험공부를 할 때가 가장 책을 읽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 기간 안 읽은 책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아직도 나는 책에 뒤덮여 살고 있고, 휴직하고 나서 구립도서관에 일주일에 한 번은 출근하고 있으니까. 최대 대여 권수인 7권을 가방에 가득 짊어지고 나올 때보다 빈 가방으로 도서관에 들어설 때가 더 설레긴 하지만, 휴직의 장점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교장선생님의 이벤트로 원하는 학생들만 밤샘 독서를 하는 날이 있었다. 당시에는 책 읽는 속도가 느렸기에 두꺼운 책을 한 권 들고 밤을 새웠지만 정말 좋은 기억이었다. 새벽에 힘들어질 때쯤 다 같이 운동장에 나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총 박혀있었고, 이는 훗날 천문학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얼마 전 나 혼자만의 밤샘 독서 데이를 만들어서 책을 읽었다. 시험공부할 때도 밤을 새본적이 없기에 아무래도 6권을 읽고 나자 새벽 3~4시가 되어 잠에 들고 말았다. 이제 몹쓸 체력이 되어서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힘들었지만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책 읽는 게 좋다. 활자중독까진 아니어도 재밌어 보이는 책 제목을 발견하면 설레곤 한다. 남들이 말하는 고전을 읽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즐기지 않지만, 어려운 책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그냥 책 읽는 게 좋을 뿐이다. 자기소개서에 취미를 독서라고 쓰면 정말 진부하고 가식적이라고 배워왔다. 그렇지만 어떡하나. 나는 책 읽는 게 정말 취미인걸. 그렇게 진부한 가식덩어리는 오늘도 혼자서 즐겁게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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