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꼬 영감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보면 그보다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바바꼬 영감은 어쩌다 한 번씩 산책하러 '나쁜 생각 공원'으로 나온다. 언제 누가 공원에 그따위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 뒷사정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다들그 공원을 이름 그대로 부르는데 딱히 거리낌도 없었다. '나쁜 생각 공원'을 산책하는 바바꼬 영감은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큰 검은색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닌다.끼리릭 여행 가방 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바바꼬 영감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금세 그 주변에서 벗어나 사라져 버린다.
온갖 비리와 악행을 습관처럼 저지르는 사람이다.
바바꼬 영감을 피하는 이유를몰랐던한 남자에게 누군가 다가와 속삭이며 팔을 잡아끌고 가 버린다.바바꼬 영감이 나타나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근처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라지니 시꺼멓고 뚱뚱한 비둘기들이 하나 둘 그 자리를 채웠다.바바꼬 영감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무심하게 여행 가방을 끌었다. 벤치 두세 개를 지나 항상 앉았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이 송송 맺힌 민머리를 한 번 훑고는 열가닥 정도 남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돈한다. 가만히 앉아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는 동안 주변에는 비둘기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별 움직임이 없는 바바꼬 영감은 호흡까지 잔잔해지자 마치 굳건한 고목처럼 보였다. 푸드덕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잔뜩 모여있던 비둘기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털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비둘기를 쫓아낸 자리에는 양갈래머리를 하고 빨강색 망토를 걸친 소녀가 서있었다.
"왜 할아버지 옆에는 사람은 없고 비둘기만 모이는 거야? 아 참, 엄마가 할아버지 이상한 사람이라고 절대 말 걸지 말라고 했는데."
소녀가 옆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을 걸고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형식적인 손은금방 내리고 대화를 이어갈자세를 잡았다. 바바꼬 영감은 소녀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수업료는?"
바바꼬 영감의 마른 입술이 단어를 뱉을 때마다 쩍쩍 갈라졌다. 아까는 손수건으로 머리를 닦던 손을 펴 들어 보이며 소녀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시늉을 했다.
"엄마가 심부름시킨 돈인데......"
소녀는 말만 그렇게 뱉고는 순순히 주머니에서 꾸깃한 지폐 한 장과 잔잔바리 동전들을 꺼내 바바꼬 영감의 자글자글한 손 위에 올려놨다. 바바꼬 영감은 그 돈을 받자마자 주머니에 쑤셔 박고는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바꼬 영감이 가는 길에 소녀가 따랐다. 공원을 벗어나 길거리를 한참 거닐자 시장이 나타났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깎고자 흥정을 시도하는 소리와 맞받아치는 상인들의 고함소리에 가방 바퀴의 비명소리가 묻혀 바바꼬 영감의 등장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다. 바바꼬 영감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든 없든 무색의 걸음을 항상 유지했다. 뒤따르는 소녀는 시장의 화려함에 취해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리기 바빴다.시장 입구에 있던 장신구 가게부터 시작해 여기저기 한 번쯤 사보고 싶은 물건들이 넘쳐나 소녀가 주머니를 두드려 보지만 곧 돈 한 푼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장을 구경하는 와중에도 혹여 바바꼬 영감의 뒷모습을 놓칠까 시야에서 그를 절대 빼놓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과일가게 앞을 지날 때 소녀의 시선은 바바꼬 영감에게 고정됐다.가만 보니 그가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걷고 있었다. 지팡이가 없는 그의 왼 손은 소녀의 돈과 함께 주머니에 박힌 그대로였다. 아까 앉아있던 공원 벤치에 지팡이를 놓고 온 것이라 생각하던 찰나 바바꼬 영감의 왼 손이 주머니에서 나오더니 무언가를 집어 들고는 곧바로 다시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시장에서는 음소거된 끼리릭 가방 소리를 내며 무색무취의 걸음을 다시 옮겼다.과일가게의 주인은 이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흥정하기 바빠 보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모습에 소녀의 몸과 망토는 그 자리 그대로 굳어버렸다.과일가게 가판대에는 바바꼬 영감이 집어간 사과의 빈자리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