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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므므강 Aug 09. 2023

못된 생각 3 (The thinking of bad)

도둑질

바바꼬 영감과 망토가 '나쁜 생각 공원'으로 돌아왔다. 아까 앉았던 벤치에는 바바꼬 영감의 지팡이가 그 자릴 지키고 있었다. 바바꼬 영감이 벤치에 앉아 손수건을 꺼내 민머리를 닦았다. 망토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 서있었다.

못된 짓만 할 줄 아는
고약한 늙은이다.

망토의 머릿속에서 그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시선은 바바꼬 영감이 입고 있는 해진 트렌치코트의 불룩한 왼쪽 주머니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니, 나쁜 사람으로 보이니?"


바바꼬 영감이 망토에게 물었다. 망토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있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세간에 퍼진 소문은 이미 그가 충분히 나쁜 사람이란 걸 알리고 있었다. 망토도 바바꼬가 못된 노인네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다. 그래도 새삼스레 시장에서 본 바바꼬 영감의 짓거리가 눈앞에 맴돌아 정신이 혼미했다. 망토가 심부름 값이라고 말했던 돈을 빼앗기듯 바바꼬 영감에게 넘겨줬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코앞에서 목격한 절도행각은 아홉 살짜리 소녀에게 색다른 광경이었나 보다. 그녀는 바바꼬 영감의 행동에 대해 실망과 배신감을 뛰어넘어 무언가 공허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것은 단순히 바바꼬 영감의 행동에서만 비롯된 충격이 아니었다. 바바영감은 망토가 받은 초점이 어긋난 충격의 정체를 고 있었다.


"사과 먹으련?"


바바꼬 영감이 자글자글한 손을 불룩한 주머니에 넣어 사과를 꺼내자 망토는 움찔거리며 반발짝 뒷걸음질 쳤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망토의 새빨간 망토색을 띤 사과였다. 바바꼬 영감의 듬성듬성한 치아로는 사과를 베어 물기에 적절치 않아 보였다. 간신히 잇몸을 붙들고 있는 치아들은 사과를 한 입 무는 순간 모조리 빠져 사과에 박혀 버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남은 치아로 버티며 틀니를 끼지 않은 것이 또래에 비해 자랑거리라면 자랑이었을 것이다. 망토는 사과를 건네받고서야 바바꼬 영감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혹시 나 때문에 훔친 거예요?"


망토의 물음에 바바꼬 영감이 흉흉한 치아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내 다 나간 이빨로 사과를 어떻게 먹겠니."


망토는 두 손으로 감싸든 사과를 바라보았다.


"시장은 활기차고 눈부신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이란다."


망토는 계속 사과만 바라보았다.


"시장에서는 물건을 갖기 위해서 그에 걸맞은 값어치를 제공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거래는 성사될 수 없고 갖고 싶은 물건을 가지지도 못할 테지. 이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정한 일종의 기본적인 범이란다. 뭐 시장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서든 그건 똑같고. 사람들 모두가 그런 이치를 알고 있단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점이 모두가 동의한다는 사실은 아니란다."


바바꼬 영감이 주저리주저리 떠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치에 대해 논하려는 늙은이의 말을 망토는 단 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말을 쉬지 않고 내뱉는 모습도 처음이라 그가 낯설었다.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말똥말똥 쳐다보는 망토에게 다시 한번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란다. 그래서 돈이 없거나 혹은 물건이 보이면 훔쳐야만 하는 병이 있는 사람들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곤 하지. 신뢰와 약속을 깨는 그런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연 방금 다녀온 시장에 몇 명이나 있었을까?"


나쁜 생각. 물건을 훔친다는 것은 공원의 이름처럼 나쁜 생각이다. 망토는 바바꼬 영감의 말을 그제야 알아듣고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내 주머니에는 사과 밖에 남지 않았었다."


바바꼬 영감은 트렌치코트 양쪽 주머니 속을 뒤집어 까 보였다. 망토에게 건네받은 돈이 보이지 않았다. 바바꼬 영감은 굳이 물건을 훔친 척하며 망토의 눈을 피해 가판대 한쪽에 돈을 올려 사과값을 지불했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망토의 눈에는 바바꼬 영감이 사과를 도둑질한 것처럼 보였었다.


"누구나 원하는 물건이 눈앞에 있으면 갖고 싶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특히 그 물건이 비싸다면 훔쳐서라도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지만 있을 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것들은 허무맹랑한 망상으로 치부하고 말지.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 나쁜 생각은 생각에서 멈춰야 하는 거란다. 알아들었으면 얼른 꺼내렴."


바바꼬 영감은 망토의 안쪽 주머니를 향해 턱을 한 번 치켜들며 말했다. 망토는 손에 쥐고 있던 사과를 벤치에 얌전히 올리고는 걸치고 있는 빨간색 망토의 안쪽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망토가 시장 입구에 있던 장신구 가게의 가판대에서 훔친 물건이었다. 바바꼬 영감은 망토가 며칠 전부터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시장에 가자마자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바꼬 영감은 망토를 위해 사과를 훔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녀의 행동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만들다. 망토는 유일한 친구이자 말동무인 바바꼬 영감이 물건을 훔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자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말았었다. 세상 누가 뭐라 지껄여도 망토에게만은 착하고 소중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수군거려도 귀 기울이지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과를 훔치는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추악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간 들렸던 소문이 어쩌면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무자비하고 지독한 악당이 맞을지도 모른다. 망토는 그가 그런 악당이 맞다면 더 이상 가깝게 지낼 수 없을 거라 여겼다. 어쩔 수 없이 나쁜 친구와는 절교해야 할 슬픈 상황에 직면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바바꼬 영감은 망토의 부모이자 선생이자 친구였기에 그는 올바른 사람이어야 했었다. 자신의 잘못을 고쳐주는 바바꼬 영감이 망토의 세상 그 자체였고 오늘은 그 세상이 무너질 뻔한 날이었다.


"내 모습을 보니 어땠니?"


망토의 다리 위에 올려진 거울에는 눈물방울이 묻어있었다. 훔친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치 바바꼬 영감의 사과를 담아 못나게 불룩 튀어나온 주머니처럼 보였다. 나쁜 생각은 생각에서만 멈출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아둬야 한다. 이 말은 미처 바바꼬 영감의 갈라진 입술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망토가 그를 붙잡고 우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낸 망토가 벌떡 일어났다. 장신구 가게에 솔직하게 사과하고 손거울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근데 난 사과보다 바나나를 더 좋아하는데. 내 돈을 왜 마음대로 사과에 쓴 거야? 돈 돌려줄 거지?"

"허, 내가 괜히 바바꼬 영감이겠느냐."




아홉 살 어린이의 돈을 뺏어 마음대로 쓴 무지막지한 바바꼬 영감은 장신구 가게에 자신이 엮이면 망토가 곤란해질 우려가 있어 시장까지만 같이 가주기로 했다. 망토가 앞장서서 시장을 향했다. 금세 기운을 차린 아홉 살짜리의 발걸음을 따라가기에 바바꼬 영감은 나이가 너무 많았다. 금방 횡단보도를 건너간 망토가 길 건너편에서 얼른 따라오라며 뒤돌아 손짓했다. 머리에 땀방울을 묻힌 채 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던 바바영감이 갑자기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지팡이와 여행 가방도 같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공중에서 빙그르르 돌던 바바꼬 영감의 눈에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주저앉은 망토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끼익! 쾅! 끼익!'


횡단보도를 지나친 빨간색 포르쉐 파나메라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보였다. 하늘에서 바라본 '나쁜 생각 공원'은 넓고 푸르렀다. 기분 좋게 하늘을 날아올라 도시를 구경하는 바바꼬 영감에게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늙고 병든 몸이지만 아쉬워도 어쩔 수 없군. 일단은 이 몸에라도 피하고 봐야지."

"누구요?"

"내 이름은 디케. 앞으로 자네의 육신은 내가 맡겠네."


속삭이듯 말하는 소리가 온 지구를 웅장하게 뒤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대로 정신을 잃은 바바꼬의 몸은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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