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생각 9 (The thinking of bad)
레미제 의원
지역 일간지 '부에나 이데아'와의 인터뷰를 마친 레미제 시의원은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 탑승하자마자 넥타이를 배꼽까지 한 번에 끌어내렸다.
"저 일간지 기자들은 아침마다 뻑뻑한 스콘만 먹어 댈 거야. 어쩜 저렇게 답답한 소리만 해대는지."
"수고하셨습니다. 의원님. 오늘 일정은 이것으로 마무리할까요?"
"일정이 또 남았어? 내가 저녁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잡지 말라했지."
레미제 의원은 어느 틈에 양말이 벗겨진 맨발로 운전 중인 벤의 등받이를 걷어찼다. 핸들을 똑바로 잡지 못 할 정도로 격하게 채이는 동안에도 그는 안정적인 운행만큼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벤은 레미제 의원의 대학교수 시절부터 조교생활을 하며 따라다닌 측근 중에 측근이다. 강의에서 보인 그의 신념에 매혹된 후 그를 따라 정치계에 입문하였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친 포부를 활짝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레미제 의원은 교수시절부터 공리주의를 제창했다. 그는 소수가 불행해도 다수가 행복하다면 결과적으로 전체가 행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벤은 공리주의 신봉자가 되었으며 레미제 의원은 나라를 이끌만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남은 일정이 뭐였는데?"
"부에나 병원의 부속 청소년 센터 방문 일정인데요. 취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오늘 엘리스와 데이트가 있다고. 특별한 날인데 이런 날에는 알아서 조율 좀 잘하자."
삐리릭! 갑자기 울린 전화기 소리에 레미제 의원이 화들짝 놀랐다. 화면에 뜬 번호를 보자마자 그는 배꼽에 걸쳐진 넥타이를 벗어던져 버렸다.
"그래. 인터뷰 방금 끝났어. 오늘? 오늘도 늦지. 뭐? 아이 여편네야! 그럼 뭐 시의원이 맨날 회식이라도 하면서 탱자탱자하는 줄 알아? 뭐 때문에 늦냐니! 거 뭐냐!"
벤은 잽싸게 낮은 목소리로 취소하기로 한 일정을 알려주었다.
"그래 , 청소년 센터 방문 일정이다. 부모 없이 힘들게 사는 애들 저녁밥이라도 든든하게 먹는지 보러 간다고. 알겠으면 얼른 끊어!"
레미제 의원이 아내와 짜증 섞인 통화를 나누는 동안 검은색 벤틀리는 어느 호텔 건물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이따 새벽 3시쯤 나오면서 전화할 테니까 조용히 대기하고 있어."
레미제 의원은 엘리스의 전화를 살갑게 받으며 호텔로 들어갔다. 곧이어 빨간색 포르셰 파나메라가 거창한 소리를 뽐내며 주차장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