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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Nov 12. 2021

알아주는 이 없어도 나는 댄서다.

스테엡 스테엡 락스텝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의 초입 나는 마음이 이래저래 복잡했다. 30대가 되어 이제 뭔가 슬슬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였는데, 그때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불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통통 튀는 동생인 민지가 스윙 댄스 바에 한 번 가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댄스 바라니 정말 즐거울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 낯설게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일단은 해보는 편이라 민지를 따라 스윙 바에 갔다.      


처음 보는 스윙 바의 광경은 정말 놀라웠다. 마룻바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둘씩 짝을 지어 빙빙 돌고 있었다. 여성 댄서가 붕 돌아 뛰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 댄서가 손을 맞잡고 동시에 뛰었다 내려오기도 했다. 민지는 바에 들어가자마자 나의 체감시간으로 10초 정도 숨을 고르더니 어떤 남성의 댄스 신청을 받고 빠르게 플로어로 들어갔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띌세라 빠르게 구석을 찾아 들어가 민지의 댄스를 감상했다. 원체 흥이 많은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스윙 댄스를 추는 동생을 눈앞에서 보니 약간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서 다리는 스윙 음악의 리듬을 타며 스텝을 밟았고 파트너와 함께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 신나 보였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플로어의 사람들의 표정에는 모두들 달뜬 흥분과 즐거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춤을 추자는 의미인 듯한 손동작을 했다. 나는 “저는 춤 못 춰요.”라고 기어들어 가는듯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상대는 멋쩍어하며 물러섰다. 민지는 내가 여기 있는 걸 잊은 것처럼 계속해서 플로어를 누비고 다녔다. 절로 리듬을 타게 만드는 스윙 음악을 구석에 앉아 들으며 내 몸도 소심한 동작이지만 같이 들썩이게 되었다. 한참이 지나 민지가 돌아왔다. 스윙 댄스 어떤 것 같냐고 민지가 물었다. 구석에서 눈에 안 띄게 어깨를 접고 동시에 리듬을 타던 나는 말했다.      


“나도 이거 배울래!”     


이거다 싶었다. 저렇게 신나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다 보면 근심 걱정이 모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본래 나는 무대 체질인 사람이다. 일견 보이는 나의 모습은 조용하고 새침하다. 일상생활에서 튀는 행동은 거의 하지 않고 주목받는 것도 매우 부담스럽다. 하지만 무대를 주면 상황은 달라진다. 불특정 다수 앞에서는 오히려 긴장이 풀어지고 내 안 깊숙이 잠자고 있던 에너지와 즐거움이 마구 솟아올라 무대를 누비고 다닌다. 마치 무대 아래에선 내성적인 개그맨처럼 말이다. 잠자는 에너지를 깨워 마구 분출할 무대가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시작할 생각에 겁도 났지만, 신이 났다.     


민지가 수업을 듣고 춤을 추러 다니던 스윙 바는 내가 사는 곳과 많이 멀어서 열심히 회사 근처의 가까운 스윙 댄스 동호회를 검색했고 11월의 어느 날 첫 수업을 들으러 스윙  댄스 바에 갔다. 스윙의 가장 기초인 지터벅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쭈뼛거리며 지하의 바로 들어가니 먼저 온 사람들이 최대한 플로어의 구석에 자리 잡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둘이 와서 조용히 소곤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혼자 와서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빠르게 바를 눈으로 스캔한 뒤 눈에 띄지 않을 구석에 조용히 서 있었다.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 들어오자마자 구석으로 숨어들어 갔다. 모두들 숨겨진 자신의 에너지를 아직은 공개할 수  없다는 방어적인 자세로 수업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 시작 시간이 되자 남녀 한 커플이 선생님으로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둥글게 원을 만들고 서서 마주 보라고 했다.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는 순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성과 바로 손을 잡고 지터벅의 기본 동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테엡 스테엡 스텝 / 리듬을 타면서 /

 스테엡 스테입 스텝


 손을 맞잡고 박자에 맞추어 스텝을 밟았다. 스텝 하나 배웠는데도 음악을 틀고 같이 움직이니 춤이 되었다. 와! 정말 너무 재밌었다. 모르는 사람과 스텝을 밟는 부끄러움은 10분 만에 사라지고 모두의 표정에 즐거움이 떠올랐다. 첫 수업은 지터벅의 기본 스텝과 몇 개의 기본 동작을 배우고 끝이 났다. 수업이 끝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신나는 스윙 음악들이 스윙 바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온 수강생들은 또다시 구석을 찾아 벽에 찰싹 붙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와 춤을 신청했다. 용기를 내어 플로어로 나갔다. 오늘 처음 배운 스텝 하나랑 아는 건 몇 개의 기본 동작 뿐이어서 춤추기 겁이 났지만 어느새 파트너의 손을 잡고 나는 플로어를 돌고 있었다. 나에게 춤을 신청한 사람은 오랫동안 스윙 댄스를 춰왔던 사람이었고, 오늘 처음 수업을 들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투입된 도우미 댄서였다. 잘 추는 사람이 리드해서 춤을 추니 생각 외로 춤이 잘 춰졌다. 그리고 정말 너무 신났다! 스윙 음악이 심장을 쿵쿵 뛰게 했고 스윙 리듬에 맞춰 바운스하는 몸의 리듬과 발의 스텝에 엔돌핀이 팡팡 터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첫 수업부터 나는 스윙댄스의 매력에 푹 빠져 그해 가을과 겨울 스윙 댄스와 지독한 사랑에 빠진 듯이 보냈다. 같이 듣는 동기들은 사석에서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무대에서 숨겨진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것이 즐거움인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스윙 바의 플로어에서 스텝을 밟았다. 파트너와 손을 잡고 추는 커플 댄스인 스윙 댄스는 맞잡은 손에서 밀고 당기는 텐션감이 느껴질 때 그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텐션감이 맞는 상대를 만났을 때 추는 스윙 댄스는 그야말로 즐거움의 최고치였다. 지터벅 수업의 마지막에는 조를 구성해서 작품을 만들어 발표회를 한다. 조원들과 짧지만 완성된 작품을 만들어가는 동안 댄스 실력도 늘고 즐거운 추억도 가득 만들었다. 이렇게 스윙댄스와 사랑에 빠져 지터벅 다음 단계인 린디 수업까지 들으며 스윙댄스를 즐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시절의 나는 댄서였다. 머릿속엔 항상 스윙 생각이 가득했고, 이어폰에서 언제나 흥겨운 스윙음악이 재생되고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나 길거리를 걸을 때에도 나만이 눈치챌 수 있는 리듬을 타며 몸을 움직였다. 춤을 추는 일로 돈을 버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었지만, 그 당시 나는 스윙 댄서였다.     


졸업 공연날의 사진이다. 엄청 과감한 옷을 골랐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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