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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우 Oct 09. 2022

INFP 엄마의 공시 성공기

게으른 심미 주의자도 공시에 합격할 수 있을까

돈 안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누워있는 시간을 제일 행복해하며, 예쁜 것을 보고, 작고 소소하고 무용하며 아름다운 것을 구매하기를 즐기는 게으른 심미 주의자 INFP인 나는 첫 직장을 찾을 때부터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크게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길게 나의 게으름과 심미주의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직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첫 직장에 입사하여 십 년간 근속했다.


나의 첫 회사에는 입사 후 결혼·임신·출산·육아를 모두 거치고 최소 10년 최대 20년까지 근속 중인 여성 직원들이 많아서 나의 기준에 딱 맞는 회사라고 믿으며 열심히 다녔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부분 퇴근도 정시에 할 수 있었고 연차도 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여서 작은 월급에도 긍정 회로를 열심히 돌리며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회사는 정시 퇴근과 비교적 자유로운 휴가 사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었지만, 육아휴직이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양가 어머니의 도움이 없이는 회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나는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출산 휴가 100일을 쓰고 다시 회사에 복귀했다. 모유와 젖병 수유 중 모유를 선택한 아이에게 젖병 수유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 했던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아이가 젖병을 거부하며 얼굴이 새빨갛게 되도록 울던 모습이 그 아이가 열 살이 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이를 달래다가, 화도 냈다가 결국 같이 울었던 기억.


다행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엄마 친구분이 시터를 해 주실 수 있게 되어서 회사를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려웠지만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을 빌려가며 아이가 네 살이 되던 3월 첫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시터비로 다 썼던 내 월급도 이제 좀 모이려나 싶었는데, 문제가 시작됐다. 아이를 돌봐주는 시간이 줄어드니 시터비도 당연히 줄었는데, 그동안 돌봐주시던 이모님이 계속 아이를 돌봐주기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그때부터 시터 찾기 여정이 시작됐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새로 구한 시터분은 아이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아이도 그분을 잘 따랐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오늘은 못 가요. 하시는 날들이 잦더니 결국은 급하게 그만둬야겠다고 통보를 하셨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시터를 거쳐가던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oo동 할머니 왜 안 와?”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에게 마음을 담뿍 주며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할머니들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더 맘이 아프고 힘들어졌다. 친할머니 친손녀처럼 지내다 갑자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일에 대해 한 번, 두 번, 세 번 설명하다가 아 도저히 못하겠다. 이제 그만해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는 이제 내가 돌봐야겠다.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꼭 옆에 있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던 휴직을 하고 꽉 채워 10년 간 일하던 회사를 떠나왔다. 일을 계속 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쓸 수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기 좋은 안정성 있는 직장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딱이었다.

퇴사를 아이 6살 10월에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 때 휴직을 할 수 있으려면 7살에는 합격을 해야 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오래 공부하는 것은 너무 싫어서 오히려 좋다고 긍정 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목표했던 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다. 계획성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눕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체력도 없는 엄마가 시험에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순공 시간을 10시간씩 찍으며 공부하는 다른 수험생들과 비교하며 끝도 없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절대 안 될 거라는 절망에 빠지기도 했지만, 꼭 전업 수험생처럼 10시간씩 공부만 하지 않아도 합격할 수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 가정을 돌보는 아내, 딸, 며느리 거기에 더해 수험생까지 많이 고단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얻어지는 열매는 꽤 달고 진하다.     


그래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꿈꾸는 육아 동지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공부하는 동안에 먼저 경험해본 사람의 후기가 얼마나 힘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지 알기 때문에 단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네이버 카페나 다음 카페에도 공무원 시험 합격 수기들이 넘쳐나지만 같은 처지인 엄마의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공시 공부에 관한 글을 올려두었는데, 힘들 때마다 와서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글을 남겨주신 이웃님이 계셨다. 블로그에 올려둔 공부시간이 적힌 달력을 보며 마음속으로 혼자 경쟁하듯이 공부했다는 이웃님도 1년 4개월 만에 합격하셨다고 했다. 내 글을 읽고 도움을 받고 합격까지 하셨다고 글까지 남겨주시니 나도 정말 감사하고 힘이 났다.      


16개월 간의 공시 분투기와 공시 노하우를 나누고자 한다. 게으른 이상주의자 INFP도 충분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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