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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나 Jul 03. 2022

소주보다 진한 20년 우정의 맛.

어쩌면 우리는 추억을 먹고사는지도 모른다.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코로나에, 육아에, 일에 다들 각자의 삶 속에서 열심히 살다 근 3년 만에 술 한잔 하자며 한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었다. 오양, 곽양,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모두 육아맘이다. 서로 보긴 본 것 같은데 어느새 우리가 못 본 지 3년이나 됐다니 시간은 참 잘도 흘러갔다.


원래 우리의 완성채는 박양까지 함께한 총 4명인데 그녀는 현재 아이 셋과 멋진 남편인 리모 씨와 함께 뉴질랜드에서 생활중이다. 그녀가 한국 들어올 때마다 다 같이 겸사겸사 모였었는데 이번엔 언제 또 한국으로 올지 모르는 그녀를 마냥 기다리며 우리의 만남을 계속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대로 셋이 보기로 했다.


만남 전날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셀레는 마음을 전하려 단체 카톡을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결국 자제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D-day. 오늘만큼은 육아는 온전히 아빠 몫이다. 난 엄마와 아내라는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시간은 오후 4시. 헤어질 시간이 이미 정해져 있기에 일찍부터 술 한잔을 기울이자며 오양이 정한 시간이다.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하며 들어선 술집엔 이미 우리 테이블 외에  몇몇의 테이블이 더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생각보다 많구나!'  그들을 보니 안도감과 함께 괜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저 멀찌감치 문쪽을 향해 앉아있던 오양이 보인다. 그녀도 나를 바로 발견하듯 손짓한다. 약속시간은 같이 지키는 그녀는 이미 먹태에 맥주 한잔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 야! 이게 얼마만이야!!!"

왜 늦었냐 질책할 할 겨를도 없이 둘 다 반가움에 얼굴에 미소부터 가득하다.

" 한잔해야지! " 오양이 말했다.

점심을 제대로 못 먹은 탓에 배가 몹시 고팠던 나는 서둘러 안주부터 시키자고 재촉했다. 


안주가 나오자 맥주 한잔을 시켜본다. "맥주 나왔습니다." 얼마 만에 보는 500cc 잔인지 감회가 새롭다. 앞에 놓인 시원한 얼음잔에 노랗게 꽉 채운 맥주, 그위를 살포시 덮고 있는 하얀 거품.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한입 가득 입에 넣어본다.

"캬. 바로 이 맛이지!!" 차갑고 시원한 맥주는 그동안 쌓인 피로와 한여름의 무더위를 한순간에 날려주는 듯했다.


"여기, 여기!!"

그때 마침 느지막이 도착한 양이 합류했다. 그녀는 차편이 오래 걸려 남편이 바이크로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도로를 질주하며 달려온 그들을 생각하니 너무  힙하지 않나?


드디어 다 모였다. 오래간만에 본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를 반기고 환영했다. 20대를 함께 보낸 우리이기에 오랜만에 봐도 어색함이 없었다.

다들 맥주 한잔씩 들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과거 이야기부터 현재 남편, 그리고 아이 이야기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우리는 신나게 대화를 이어갔다.


" 맥주 배부른데 소주 먹을까?"

" 올~~~ 좋아! 바로 그거지!"

나의 제안 한마디에 친구들은 환호성이다. 평소에 술을 잘 먹지 않는 내가 저리 말하니 술을 즐겨먹는 그들이 듣기엔 너무 기특했나 보다. 오래간만에 마시는 소주인지라 그냥 소주보다는 과실주가 나을 듯했다.  주문을 하려 하니 직원은 <아이 참이슬><빠삐코 처음처럼>뿐이라고 했다. 너무 생소했지만 어렸을 때 즐겨먹던 사탕과 아이스크림 이름을 딴 소주가 요즘 나왔다는 게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다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그것들을 시켰다.


 우리는 서로의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일찍 만난 탓에 한참을 얘기해도 창밖은 밝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해가졌다. 술이 얼큰히 오른 오양이 말했다.

" 아 노래방 가고 싶다!"

 


"그래? 그럼 가자~!"

우린 그렇게 2차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 아~이 노래방 냄새." 오양이 말했다.

나에겐 술집도 오랜만이 었지만 노래방은 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못해도 5년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버튼 예약 기계 하며 마이크, 노래방 특유의 분위기가 반가우면서도  뭔가 되게 이상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우리는 추억의 노래를 예약하고 신나게 불러댔다. SES의 <I'm your girl> 반주가 나오자 뭔가에 홀린 듯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나와 다 같이 춤을 추고 노래했고, 소찬휘에 <tears>를 부르며 셋은 떼창을 했다. 어어 난 20대 때 참 핫했던 남성 힙합그룹 "드렁큰타이거"의 < 난 널 원해>를 예약했다. 노래가 나오지 마자 그들의 노래와 랩을  라임에 맞춰 신들린 듯 불러댔다. 몇 년 만에 부르는 노래임에도 신기하게도 내 머리는 그 리듬을 고스란히 다 기억하고 있었다.  " 낯이 익지도 않았지만 같이 마치 달콤한 연인같이 하나 되는 우릴 봤지." "Tiger is in the presence bam bam!!" 다시 떼창이 이어지고 우리 모두는  마치 20대 대학생들 , 서로가 드렁큰타이거인냥 노래와 물아일체가 되어 그 시절 그 노래를 신나게 다 같이 불렀다.


여러 가지의 생각과 추억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다. 이제 슬슬 익숙해지는 호칭이 아줌마 이기도 하며,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내였지만 적어도 순간만큼은 모든 직함을 잠시 잊은  자유한 20대 청춘들이었다.


' 맞다. 내가 이랬었지. 우리가 이랬었지..."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지난 대학시절을 한동안 잊고 살았었다. 우리의 톡톡 튀고, 즐겁고, 자유했던 20대를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각자 우리 안에 꾸겨 넣어져 있던 그 시절 하나같이 다들 꺼내놓은 것이다.


난 새삼 느꼈다. 어쩜 우리의 삶은 지나간 세월의 추억으로 이뤄진 한 덩어리가 아닐까. 분명 현재에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과거 그 시절에 머문 듯 추억을 너무도 맛있게 꺼내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추억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즐거울 리가 없었다.


왜 우리 부모님들이 내가 어릴 때 그렇게나 자주 " 우리도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20대다"라고 말씀하셨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셋은 그렇게 소주보다 진한 20년 우정에 맛, 추억의 맛에 달큰히 취해 한참을 행복해하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잘 지내다 또 보자 얘들아!"



과거의 향기는
라일락 꽃밭보다 향기가 진하다.
-프란츠 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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