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마을이 흉흉한 일에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사람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으로 시작하는 쓸데없는 말과 "그쪽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요..."처럼 이웃을 함부로 비난하는 말을 한데 모아 구덩이에 파묻었다. 말 장례를 치른 셈인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툼질과 언쟁이 수그러들었다고 한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언어의 온도-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에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진료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른 호칭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 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은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환자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박원사 님, 김여사 님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 "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라고 되 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이 '아플 환' 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가면 더 아파요."
" 아.."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 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 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언어의 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