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딸 오십 엄마 팔십
올해 5월은 엄마의 팔 순 잔치였다. 서울 장남과 캐나다를 오가는 넷째 막내 차남, 그 사이에 딸 둘이 있다. 나는 셋째로 35세에 사별 후 엄마는 지금껏 내 보호자로 우리 집에 함께 계신다.
집 뒤 텃밭은 할머니들의 사랑방이다. 천평 가까운 텃밭을 가꾸시는 많은 할머니들 사이에 엄마는 인기가 많으시다. 엄마가 친척 장례식에 가셔서 며칠 없으시던 때에 텃밭으로 나가는 우리 집 뒷문에는 선물들이 쌓였다. 평소 같으면 엄마가 직접 받아오셨을 선물들이다. 텃밭에서 난 고추, 상치, 호박, 오이, 물김치등이다. 엄마도 텃밭을 하시니 종목이 차이는 없어도 늘 할머니들이 나줘주시는 것을 가지고 오신다.
엄마 인기의 가장 큰 요인이 우리 집 수도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집 수도는 천평 되는 텃밭에 가장 가까운 수도다. 가뭄이 길어지면 받아 둔 빗물이 동이 나고 집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때는 모두 우리 집 수돗물이 절실하다. 평소에 관계를 잘해두어야 이때 텃밭 할머니들의 자식 같은 농작물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제법 진보적인 우리 엄마도 아들 선호사상이 꽤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로 이런 대화에 서로 맞장구치시며 대화를 이어가신다. '딸 키워봐야 소용없다. 남 좋은 일 시킨다.' '우리 며느리는 명절에 늦게 와서 손도 까딱 안 한다. 제사에는 직장 다닌다고 코빼기도 안 보인다.' '00 이 집 이번에 아들 손주 봤다더라 와이고..잘됐데이~ 첫 손준데 딸이믄 우얄쁜 했노' '이번에 내가 장남 줄라고 보약 하는데 같이 할란교?' 내 방에서 들리는 할머니들의 대화에는 아들 사랑이 언제나 넘친다.
우리 엄마는 장남인 서울 오빠집에서 여생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드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름 형제 중 제일 잘 나가던 셋째 딸인 나였고, 엄마는 내 옆에서 20년 넘게 도와주시고 도움받으면서 사셨기 때문에 엄마가 연로해지셔도 엄마의 돌봄은 내 몫이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성격에 50 중반을 넘은 서울 오빠 부부와 맞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햇과일을 좋아한다. 텃밭 뇌물 같은 선물들 중에 내가 좋아하는 햇과일이나 귀한 것이 들어오면 엄마는 마치 퇴근한 남편에게 자식들 몰래 섬기듯 챙겨주신다.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다." 하시면서 말이다. 퇴근해서 들어가면 엄마는 뭘 더 챙겨주고 싶어서 몸이 바빠지신다. "저녁 뭐 먹을래? 밥 금방 해놨다." 내가 반찬 투정이라도 하면, 너무 미안해하시기도 하시고 퇴근한 내 표정이 행여 어두우면, 차마 묻지도 못하시고 내용도 모르시면서 걱정을 하신다.
엄마에게는 서울 사는 귀한 장남이 있다. 그리고 캐나다를 오가는 똑똑한 차남도 있다. 엄마와 같은 교회 다니는 장녀는 집안 대소사를 꼼꼼히 따뜻하게 챙기며 엄마에게 효도한다. 나는 셋째인데 엄마의 남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햇과일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는 막 익은 자두를 따다 주신다. 더 익으면 다른 사람이 따간다며 놓치지 않으신다.
우리네 엄마들은 남편을 먼저 보내고 3~40년이 지나도 DNA 속에 남편을 섬겨야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셋째 딸은 엄마에게 남편의 역할이 아닌 딸로 좀 더 섬기고 효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