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오늘 스트레스 최대치입니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해 화상 수업을 잘 마쳤다, 고 생각한 순간, 띠링~ 하고 온 메시지를 보고 난 후,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 버렸습니다.
한 어머니가 보내온 메시지는, 화상 수업 때 아이가 선생님을 여러 번 불렀는데도 시켜주지 않았다고 속상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화상 수업 시 음소거 해제하기, 카메라에 손 들고 발표 의사를 표시하기,라는 발표 규칙을 지키지 않아 아이의 말이 교사인 아내에게 전달되지 않은 사실을 아이의 어머니는 잘 모르고 계셨나 봅니다.
그 집은 일하시는 어머니를 대신해 할머니께서 항상 아이를 돌보시던 가정이었습니다. 재택근무로 아이의 화상 수업을 처음으로 보시고는 아이가 음소거를 해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생님을 부르는데 선생님이 자꾸 다른 아이들을 시키니 마음이 뾰족해지셨나 봅니다. 그래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먼저 생각해 보지 않으시고 선생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내는 속상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서운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전합니다. 음소거가 되어 있어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손을 들지 않으니 발표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그래도 선생님이 못 봐서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화상 수업 시 발표 규칙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아이의 엄마와도 비슷한 내용의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마음이 가뿐해지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원격 수업으로 힘들고 지칠 아이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며 매일 성의껏 준비해 화상 수업을 진행하던 아내의 속이 오늘은 매우 시끄러워집니다. 아무리 가뭄에 콩 나듯 만난 담임이라도 한 해 동안 가정과의 소통을 위해 기울인 아내의 노력이 전달되지 않았구나, 싶어 못내 섭섭합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아내는 시끄러운 속을 토해내 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다음 날 이어질 수업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그런, 지랄 맞은 엄마가 있어?"
"그 애, 평소에 원래 발표 잘 안 하는 애지?
"엄마가 그러니 아이가 제대로 보고 배우겠어?"
마치 남편이 아내가 된 듯이 발끈합니다. 그냥 좀 어지러워진 마음을 속에 담아 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남편이 너무 열을 내고 반응하니 아내의 불평이 오히려 쏙, 들어갑니다.
순간, 아내의 머릿속에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겪었던 비슷한 경험이 떠오릅니다. 아내는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자, 예쁜 임부복 한 벌을 사서 입었더랬습니다. 그것을 입고 출근한 아내에게 '왕언니'라 불리던, 연세가 지긋하시고 평소에도 입이 걸기로 소문난 여자 선생님 한 분이,
"야! 너는 배도 안 나왔는데 뭘 벌써부터 티 나게 임부복을 입고 다니냐?"
라고 말벼락을 날리셨었습니다. 아내는 이 말을 듣고 속 상한 마음을 남편에게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남편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어후,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분한테 전화해서 욕해 준다는 걸 이제 괜찮아졌으니 됐다고, 오히려 아내가 말려 겨우 진정시켰었습니다.
아내는 그때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진짜 전화하라고 수화기를 갖다 줘도 그리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에게 시~원하게 뱉은 그분을 향한 거친 말들을 정작 누군가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도 좋았습니다. 아내 대신 실컷 욕해주고 과장되게 화내 주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그럴 때는 자주 '남 편(남의 편)'인 사람이 꼭 '내 편' 같은 생각이 들어서일 것입니다.
속상하고 속 시끄러울 때 '내 편'이 되어주는 '남의 편'도 나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린 한편이니까요. 오늘은 아내도 '안 해!'가 아니라 '아, 네~!' 해주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