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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영 Jan 01. 2024

'소울 푸드'란 이런 겁니다


김치죽은 어렸을 때 겨울이면 항상 엄마가 해 주시던 음식이었다. 두툼한 고깃덩어리도, 하다못해 참치캔 속 기름 한 방울도 구경할 수 없었던, 붉은 기 도는 멀건 김치죽이 도대체 왜 그렇게 맛났던 것일까. 심지어 김치죽의 최종 맛은 이제는 경계하며 잘 사용하지 않는 MSG의 대표 주자, '미원'이 결정했을 텐데.


김치와 찬밥을 섞은 후 물을 붓고 팔팔 끓이다가 어느 정도 진득해진 상태가 되면 미원을 톡톡 첨가한다. 그러면 김치죽은 그것을 넣기 전과 넣은 후 완전히 다른 맛탈바꿈되었다. 그래도 이날 이때까지 크게 아픈  없이 건강한 편이니, 현대인들의 MSG에 대한 경계는 지나친 호들갑인 듯싶다. 언젠가 추억의 김치죽 맛이 생각나 그대로 재현했는데도 그 맛이 아니어서 실망했던 적이 있다. 소울푸드란 음식 자체의 맛만으로 구현될 수 없기에 '소울'을 붙이는 것인가. 그러니 '소울 푸드'란 함께 먹는 이들, 장소, 당시의 공기마저 녹여낸 음식이리라.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함께 했던 이들과 나누는 음식의 역할은 더 큰 듯하다. 9인 공저, <지금 당신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의 작가님들과 함께 나누었던 식사가 그랬고, 두 동생네와 함께 한 음식이 그러했다.


9인 공저자 중 한 분인 고경애 작가님은 '모두의 글방' 대표로 남녀노소에게 글쓰기 씨앗을 전파하시는 분이시다. 재주가 많은 작가님은 요리와 글쓰기 강연을 겸하고 계신다. 고작가님은 미사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2차 출판 강연회 이후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더 여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의 글방에 우리 모두를 초대하셨다.


고작가님의 글방은 그녀가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 보여 주었다. 별도로 마련된 작은 테이블엔 초대한 작가들의 책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우리의 공저 책 여러 권이 보기 좋게 세팅되어 있었다. 여전히 '작가'라는 타이틀이 민망한 내가 다른 글방에서 만난 내 책에 어찌 감격스럽지 않았을까. 고작가님이 '종종 협업을 진행하는 파트너'라고 소개해 주신 파티셰 한 분과 함께 손수 요리해서 내어주신 음식들은 그냥 요리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나, 하나의 요리에 들인 정성과 진심은 고스란히 전해져 우리들의 혀를 녹이고 마음을 덥혔다.


우리의 영혼을 달래 준 책 전시와 음식들, 고경애 작가님 감사합니다~^^ by 정혜영


온기 가득한 음식은 마음을 열고 사람을 대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글로 만난 느슨한 타인들을 좀 더 단단한 연결 고리로 맺어주는 것은 개인들의 삶을 나누는 이야기의 힘이었다. 이야기와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윤활유는 역시 음식이었다. 요리사의 마음을 다한 음식을 함께 나누는 순간, 사람들한마음이 된다. 감탄과 감사를 오가며 우리는 먹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누군가에게 음식으로 대접받는 게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생각했는데 까닭이 있었다. 한 입도 안 드시며 우리가 머무는 동안 내내 요리를 만들어 내어 오시던 분이 오랜 시간 우울과 절망 속살아오다 '요리'라는 새로운 불씨를 붙들고 새 삶을 살아낼 용기를 얻은 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 분이 만드신 요리에 어찌 영혼이 담기지 않을 것인가. 그러니, '소울 푸드'란 요리사의 생의 반전으로 빚어예술품이다.


연말이니 가족들과 조촐한 식사라도 했으면... 는 생각은 내 것이 아니었다. 학기말 바쁜 학교 업무에다 주말마다 나아가지 않는 원고를 붙들고 생각을 그러모으는 작업 중이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여느 해 같으면 이 시기에 가족 단톡방에 한 번쯤, "우리 밥이라도 먹을까?" 했으련만,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우린 여러 관계 중 혈연관계를 가장 느슨하게 대하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가족이니 이해해 줄 거라고. 끊어질 관계도 아닌데 이번이 아니어도 다음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고.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관계를 가장 헐겁게, 마지막에 챙긴다. 그러다 별안간 날아든 비보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어리석음. 어느 시인이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고 했던가.  지당한 말을 다시 전해 준 사람은 친정 엄마였다.


엄마는 엄마의 자식들이 한 자리에 만나 한 끼 밥을 나누며 온기 나누기를 바라셨다. 먼 거리라 함께 하지 못하실 테지만 자식들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의 마음을 알고 나니 뭐가 중한가 싶어졌다. 마음 가는 곳에 길이 있는 걸 자꾸 길이 없으니 마음을 못 잡는 거라고 핑계를 대고 있었다.


주말에 동생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누구 하나 희생하는 식사 자리는 피하자고 밖에서 장소를 잡자는 게 중론이었으나, 번잡스러운 장소를 싫어하는 남편은 자신이 요리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아내의 친정 식구들을 위한 남편의 요리가 차려졌다. 


다듬고 씻고 간하여 재었다가 오븐에 두어 시간 구워내는 걸로도 모자라 소스를 만들어 바르고 다시 익히는 번거로운 요리. 남편의 요리는 '바비큐 폭립'이었다. 얼마 전 먹어 보고 반해서 내가 두 번째로 추천했던 마라샹궈는 마라 맛이 생소했던 동생들에게 썩 환영받지 못했다. 모두가 좋아했던 크림 스파게티나 하라고 할걸. 그건 마라샹궈에 비하면 남편이 눈감고도 하는 손쉬운 요리였는데. (핸드폰 카메라보다 젓가락들이 먼저 도착하여 헤집어지는 바람에 음식 사진을 못 찍었어요. 신랑 미안~ ㅠ)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사느라 소원했던 각자의 삶이 포개졌다. 애쓰며 바쁘게, 지난하게 휩쓸리던 각자의 한 해를 어루만지며 그 속에서 일군 결실들에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자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엔 서로를 다정하게 보듬어줄 온기 가득한 가족이 가장 큰 위로다. 그러니 '소울 푸드'란 내게 가장 가까운 이의 입에 가장 따뜻한 마음을 고봉으로 담아 한 입 넣어주는 행위다.


다정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음식, 소울 푸드가 주는 위로. 몸을 옹송그리게 만드는 추위와 한 해 동안 내세울 것 하나 없이 보낸 것 같은 패감을 이겨내는 데 이만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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