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이었다.
길가에 다소곳이 떨어진 낙엽을 보며 가을인가, 싶다가도 나, 아직 여름이야! 를 외치는 더운 기운 가득한 낮기온에 아리송해지는 며칠이 흐른 뒤, 연일 주룩주룩 내리는 비 탓이었다. 올까, 말까 주저하는 소심한 가을을 훅 끌어당기는 비. 이제 진짜 가을이 깊어지려나보다. 그래서였을 게다. '가을' 관련 시를 캘리그래피로 쓰고 싶어진 건.
아름다운 우리말 시를 캘리그래피로 쓰며 음미하는 호사의 시간. 내 글씨가 시와 만나 어떤 느낌으로 탄생될지 두근대는 순간부터 나는 미리 행복해진다. 그러려면 마음에 와닿는 시를 먼저 골라야 하는데 우리말을 아름답게 살려 표현한 시인으로는 김소월 님이 최고다.
김소월 님의 시집, <진달래꽃>이 출간 10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발간된 김소월 전 시집, <진달래꽃, 초혼>(스타북스 출판사, 2025)에는 초판에 실린 127편의 시 외에 각종 신문, 잡지와 시인 사후 출간된 다른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을 총망라해 110편이 추가 수록되어 있다.
김소월 님의 시를 모두 모아 놓은 시집이니 세상사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의 총합이겠다.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렸을 시인의 언어를 얼른 만나보고 싶었다.
과연 수많은 시 제목 목차 중에 '가을'이라는 제목의 시가 빼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읽어 보니 난생처음 본 시에 듬성듬성 배치된 낯선 시어들에 당황스러웠다. 내게 가장 친숙한 시인의 시가 이리 낯설다니... 첫눈엔 시의 정확한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었는데, 희한하게 특유의 한과 슬픔의 정서는 짙게 건네졌다. 이것이 김소월 님 시의 힘인가.
시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온라인 국어사전을 들여다보며 얼추 의미를 파악했지만,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먼저 가장 익숙한 검색 엔진인 초록창에서 시인의 시를 검색해 보았다. '김소월의 시 가을'이라고 쳤더니 김소월 님의 가을 관련 시들에 대해 쓴 각종 블로그 글들이 올라왔다. 수많은 글들 중에서 내가 찾는 시는 없었다.
'10월의 가을 시 모음(김소월 윤동주...)'라는 제목을 보고 옳다구나! 찾아들어 갔더니 김소월 님의 시 중 '진달래꽃'을 소개하고 있어서 어리둥절해졌다. 그래도 진달래꽃이 상징하는 계절적 특성이 아닌, 시에 녹아있는 정서로 계절을 가늠한다는 건 상당히 시적인 감성임에 틀림없다.
결국, 시를 쓴 여러 이미지들 속에서도 내가 찾는 시는 찾지 못했다.
시 속 문구 중, '서러워라, 인 눌린 우리의 가슴아!'라는 문장이 있다. '인 눌린'이라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가 알고 싶어서 검색했던 것인데 시 자체를 못 찾고 헤매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검색창에 그 구절을 통으로 쳤더니 그제야 내가 찾던 시를 다룬 글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각 블로그들마다 시의 어휘들이 약간씩 다른 것이었다. 100여 년 전에 쓰인 시이니 어휘들이 현대어와 차이가 많이 나긴 하겠지만 소개하는 곳마다 어휘 차이가 있으니 혼란스러웠다. 급기야 출판사 시집에 수록된 시마저도 정확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인공지능에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챗지피티에게 '김소월 시 가을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다른 블로그 글들처럼 시인의 다른 시, '가을 저녁에', '가을 아침에'와 같은 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고 했더니, 챗지피티는 김소월 시인의 시라며 몇 가지를 띄워 주었다. 그런데 그 시들은 김소월 시집 초판뿐 아니라 각종 매체에 실린 시들을 총망라해 추가했다는 100주년 기념 김소월 시 전집에도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자꾸 아니라고 다른 걸 요구하니 챗지피티가 아예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미심쩍었다. 챗지피티는 시인의 시, <가을 저녁에>를 띄워주며 <가을> 시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모르고 검색했다면 <가을 저녁에>라는 시를 <가을>로 알 뻔했다.
계속해서 내가 찾는 건 그게 아니라고 하니까, 맹랑한 챗지피티 좀 보소. "함께 찾아"보잔다.
결국, 내가 시집에 있는 시를 사진 찍어 파일로 올려주었더니 이 시가 맞다며 시 전문을 다시 띄어 주었다. 그마저도 어휘 몇 개를 틀렸는데, 1연에서 '벋어'를 '벌어'로 '왔어라'를 '왔더라'로, 2연의 '꿈 발아래'를 '꿈 받아래'로 보여주었다. 한 개씩 짚어주며 다 수정해 주었더니 그제야 제대로 완성이 되었다며 능청을 떠는 게 아닌가! 챗지피티의 의뭉스러움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김소월 님의 아름다운 가을 시 한 편을 캘리그래피로 써보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번은 자가 운전해 다녀온 이 느낌은 뭘까.
아무튼, 여기저기 끝없는 검색 끝에 낸 결론은, '믿을 건 책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3의 법칙처럼 여러 출처에서 책과 다른 정보를 접하니 책의 정보마저 불신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모든 정보를 인터넷 검색으로,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구태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책에서 얻을 필요를 못 느끼는 이들은 '독서 무용론'까지 펼친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들은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내 안에서 숙고되지 않은 것들은 내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김소월 님의 시, '가을'은 처음 접한 낯선 시였지만, 어쩌다 공들여 한참 들여다보게 되었더니 내 안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시가 될 것 같다.
결국 내 안에 남는 건 천천히, 정성 들여 곱씹는 것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