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강 Yoon Kang Feb 20. 2022

당신의 사랑에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미래일기>

이 연애의 끝을 알고 있지만,


미래일기의 공식 예고편, 두 사람은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사진=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
'99송이의 만개한 해바라기밭에서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작별한다'


앞에 놓인 일기, 약속의 시간, 북적이는 영화관, 미래일기 설명회, 암전, 그리고 남게 두 사람.


다분히 작위적이고, 만화적인 이 흐름 속에서 <미래일기>의 두 남녀가 만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미래가 적힌 일기를 제작진으로부터 전달받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편이 알 수 없는 일기를 받아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오키나와 출신의 마아이와 홋카이도 출신의 타쿠토의 묘한 감정은 그렇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미래일기>는 어떻게 시청자들에 설렘을 전달했을지, 두 사람의 미래는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미래일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미래일기> 특유의 느긋한 연출로 힐링과 설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사진=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

§느림보지만 일관된, 묘한 연출의 맛

<미래일기>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오키나와와 훗카이도의 자연풍경부터 출연진의 미세한 표정변화까지. 과장과 자극으로 가득찼던 기존의 연애 프로그램과는 달리 천천히 모든 상황을 음미할 여유를 준다. 특히 일품이었던 연출은 바로 '손 잡기' 미션. 제작진은 훗카이도에 도착한 마아이에게 일기를 하나 건낸다. '남자의 에스코트에 반한 그녀는 그의 손을 잡는다' 일기를 읽은 마아이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타쿠토에게 돌아가는 마아이. 마아이와 타쿠토는 훗카이도 공항을 빠져나온다. 고개를 숙인채 걷는 마아이. 마아이의 손이 타쿠토의 손에 닿을락 말락 한다. 제작진은 손이 맞닿는 순간까지 사람의 풀샷을 정면으로 잡았다. 어떤 자막도, 다른 컷도 없었다. 기다림 끝에 마아이는 타쿠토의 손을 잡았다.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출연진들도,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 자신도. <미래일기>에서 느꼈던 낭만성은 DM 대신 펜팔을 보냈던 그 시대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


깔끔한 풀샷은 <미래일기> 제작진의 특징이다. 사진=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채널

§깔끔한 화면 구성으로 더해진 감성 한 스푼.

<미래일기>에서 연출자막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프로그램에서 자막은 단순 보조적 수단일 뿐이다. 미래일기의 룰을 설명하고, 출연진의 이름을 설명할 때만 등장하는 무채색의 자막은 외려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됐다. <우리 결혼했어요>나 <연애의 맛>과 같은 한국식 연애 예능 자막과는 결이 달랐다. 해당 자막의 경우, 웃음 포인트를 잘 짚어 재미요소는 극대화되지만 억지 설렘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다. <미래일기>는 넷플릭스에 수출된 만큼, 언어 장벽을 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솔로지옥>의 글로벌 인기 요인 중 하나로 '자막 대신 영상으로 소통'했던 것이 유효했으니 말이다. 자막이 없으니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일기>는 영상으로 시청자와 대화했다. 오키나와의 풍경부터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표정까지. 자막없는 이 깔끔한 연출덕에 두 사람의 마음이 더욱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래일기>의 일기를 비롯한 다양한 소품들의 의미도 곱씹어볼 것! 사진=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만화적 상상력을 건드리는 소품 연출 

여기에 적재적소의 소품이 배치되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눈사람, 유리공예, 해바라기. 수많은 소품들이 단편적 의미가 아닌 복합적 의미로서 <미래일기>에 작용했다. 문학도로서 흥미로운 해석을 몇 개 내렸는데, 해당 부분에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흰색 글자로 처리했다. 읽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드래그해서 읽어보시길!



먼저, 눈사람. 눈은 고체면서도 액체로 변하기 가장 쉬운 물질 중 하나다. '변한다'는 것이 바로 이 소품의 주 포인트. 여름의 홋카이도에서 눈사람을 만들어야 하는 타쿠토는 눈이 쌓인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힘겹게 눈사람을 만들지만 결국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마아이를 떠나보낸다. 마아이가 떠난 버스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타쿠토. 그 옆에는 힘들게 만들어온 눈사람이 녹고 있다. 서로를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의 감정이 고체와 액체를 넘나드는 눈처럼, 그리고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지만 '눈사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무언가처럼 계속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화, 해바라기의 연출은 또 어떤가? 1, 3, 7, 99, 그리고 만개한 해바라기 밭에서의 클라이맥스는 시각적 황홀함을 충족시키고 그간의 해바라기 복선 회수의 이중적인 효과를 냈다. 첫 눈에 반하다, 용기내어 고백한 사랑, 은밀한 사랑, 영원한 사랑. 꽃말을 활용한 단순한 연출이 <미래일기>를 하나로 잇는 구심점

이 되었다고나 할까. 제작자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연출 중 하나다.


아쉬웠던 MC들의 활용. 저 출연자분은 약간 박나래님 느낌이 났다. 사진=넷플릭스 유튜브 캡쳐

§미흡한 소재활용과 재탕, 변주 없는 OST 남발은 아쉬워

비연예인 출연진 2명이 주연인 이 프로그램에서 느림보 연출로 분량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메인 MC와 패널들이 앞뒤 5분만 등장했기에 이 사이사이를 채울만한 무언가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하트 시그널>이라면 출연진들의 추리가 들어갔을텐데, 이 프로그램에서 MC들의 역할은 지난 이야기 정리와 공감성 멘트에 그치지 않아서 아쉬웠다. 잔잔한 연출은 좋았지만, 지루했던 것도 사실.


나아가 '미래가 적힌 일기'라는 신선한 소재의 활용도 아쉽다. <우리 결혼했어요>의 미션카드 그 이상의 효과가 있었나 의문이다. 물론 알 수 없는 미래가 적혀져 있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변주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어 아쉬웠다. '일기'인 만큼, 그림, 연필, 지우개 등 다양한 아이템을 접목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거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연출이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 


마지막으로 단조로운 OST. OST 선곡은 좋았다. 아직까지도 흥얼거릴 만큼 자주 듣고 있는 곡인데, 문제는 이 곡 하나밖에 없었다는 점. 다채로운 선곡으로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던 <하트 시그널> 음향팀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수출용 프로그램이어서 그랬던 건지, 적극적인 OST 삽입만 되었어도 지루함이 조금 덜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


재탕의 연속과 반복되는 화면 구성이 있는 프로그램일지라도, 나는 이 프로그램이 좋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엔 출연진의 진정성이 있다. 버스에서 펑펑 흘렸던 눈물, 설렘을 느꼈던 묘한 표정까지. <가시나들> 속 출연진의 눈물, 진심어린 표정들이 오버랩되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은 장르를 떠나 '진심'과 '진정성'이 엿보이는 프로그램일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레마 같은 부드러움, <가시나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