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왕 찐천재 홍진경편
"짤"에 대해 아는가? 짤림방지의 준말 짤방의 준말이 짤으로, 게시글이 쉽게 짤림(묻힘)을 방지하기 위해 사진을 올리는 문화에서 등장한 옛날옛적 신조어다. 과거의 짤은 시덥잖은 것이었다. 헤비 인터넷 유저 혹은 소속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은여였고, TV와 같은 대중매체로의 짤 유통은 'B급 케이블 감성'에서만 허용됐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것이 유튜브를 비롯한 SNS의 등장이었다. 싸이월드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이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탔고, 사람들은 이미지로 대표되는 짤을 비롯해 소위 '드립'이라 불리는 신조어에 더욱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짤과 드립을 학술적 용어 '밈'으로 부르고 있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이 등장하고 있다. 즉, 대중문화에 대한 밈의 기여도가 더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만난 짤방'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짤들의 유래를 살펴보고. 이를 다시 감상할 수 있는 다시보기처와 회차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상황과 맥락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게 밈이지만, 알고 쓰면 더 재밌는 것 역시 밈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밈의 탄생배경과 후일담을 샅샅히 파헤쳐보자.
'다시 만난 짤방', 첫 주인공은 예능왕찐천재, 홍진경이다. 최근 카카오TV 오리지널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으로 인기몰이 중인 그녀는 3개월만에 구독자 수 50만 명을 돌파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특히 MZ세대를 비롯한 밀레니얼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 모델로 방송데뷔 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홍진경이 인기를 얻었던 비결은 뭘까? 정답은 그녀가 만들어낸 짤에 있다. MZ세대를 홀린 홍진경, 그녀의 대표짤을 알아보자.
▶ MBC <무한도전> : 웃음사냥꾼 홍진경
국민예능 <무한도전>에 꼭 맞는 여자 게스트로 뽑히는 멤버가 있다. 이효리, 장윤주, 홍진경. <무한도전>의 B급 감성과 홍진경의 조합은 그야말로 웃음보장수표였다. 2009년 <식객> 특집부터 심사위원으로 두각을 내기 시작하더니, <무도 큰 잔치>의 유럽춤, <식스맨 특집>의 홍일점, <바보전쟁 순수의 시대>에서는 뇌순남녀의 리더로 활동하며 정점을 찍었다.
─ 유럽춤으로 무대를 장악하다 (<무한도전> 416회, <무도 큰 잔치>, 웨이브)
홍진경의 유럽춤이 인터넷을 장악했던 걸 기억하는가? 설날 특집으로 방영된 <무도 큰 잔치>에서 홍진경은 댄스 신고식 중 하체는 고정하고 몸만 그루브를 타는 기괴한 춤을 선보였다. 현장 반응은 초토화.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f(x)의 <4 walls>와 합성하며 유명세를 탔고, <언니들의 슬램덩크 2>에서는 유럽춤을 딴 안무가 등장하며 언니쓰의 신곡 <맞지>에 쓰이기도 했다. 참고로 김영철의 인생을 바꾼 3초, '힘을 내요 슈퍼파월'도 이 회차에서 방영됐으니, 킬링파트 제조회차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 "지금 지쳤나요? 아니요" (<무한도전> 422회, <무도 식스맨>, 웨이브)
잇다른 악재에 <무한도전>은 새로운 멤버를 직접 뽑으려 했고, 그렇게 시작된 '식스맨 : 시크릿 멤버' 특집. 최시원, 강균성, 장동민, 광희 등 내노라하는 예능인들이 참석했고, 홍진경은 후보 멤버 중 홍일점으로 활약했다. 밤샘 녹화와 아이템 PT로 지칠 대로 지친 홍진경, 이 상태에서 거짓말 테스트가 시작되고, 유재석의 "지금 지쳤나요?"라는 질문에 홍진경은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당연히 거짓. 홍진경의 초췌한 얼굴과 수염분장은 시험기간 학생들과 야근철 직장인들의 애착프사가 되었다.
─ 히틀러가 된 라이트형제 (<무한도전> 450회, <바보 전쟁 - 순수의 시대>, 웨이브)
<무한도전> 멤버들이 기획한 특집 중 대박난 특집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가? <토토가>가 일으킨 복고열풍은 <슈가맨>으로 계승됐고, 이 특집은 6년 뒤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으로 재탄생했다. 바로 <바보 전쟁 - 순수의 시대>! 하하와 광희의 기획안으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ㄴr는 가끔 눈물을 흘린ㄷr...☆' 싸이월드체의 살아있는 증인 채연, '장미는 영어로 lose'의 간미연, 뚜찌빠찌뽀찌 댄스 심형탁 등 연예계 대표 뇌순남녀(뇌가 순수한 남녀)가 바보 어벤저스로 탄생한다는 내용이다. 홍진경은 파리 모델 생활을 어필하며 각국의 수도를 줄줄 읊는 장기를 보이는데, 합숙에 들어간 날 심형탁과의 지식 대결에서 라이트 형제를 보고 히틀러라 답해 현장을 초토화시켰다. 콧수염 하나로 비행기의 아버지를 전쟁광으로 만들어버린 홍진경. <공부왕찐천재 홍진경>의 모티프는 어쩌면 이곳이 아닐까? 유튜브 구독자 만재님들이라면 꼭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 몸치 언니부터 따뜻함까지
여성 출연진 6명의 꿈계모임을 콘셉으로 한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홍진경은 그야 말로 '날아다닌다'. 과감한 패션과 헤어로 MZ세대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성공한 것. 한편으로는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사소한 것에 감동받고 툭하면 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슈퍼모델 홍진경이 아닌 따스한 인간 홍진경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덤.
─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는 홍진경 (<언니들의 슬램덩크> 12회, 웨이브)
특히 걸그룹 '언니쓰' 데뷔기에서 홍진경은 엉성한 춤실력과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했다. 핑크색 헤어와 옆이 틔어진 레깅스 묘하게 뻣뻣한 동작과 자신감 넘치는 음치의 모습은 그야 말로 웃음 폭격에 가깝다. JYP와의 안무 점검 시간에서 자유 댄스 구간에 심취한 나머지 원래 안무를 까먹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안타까움에 울지만, 자신의 웃음욕심에 웃는,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라면서 다시 우는 그녀의 모습은 리얼리티라기보다 콩트에 가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현실에 있을 법한 개그가 아니라는 것. 이 짤은 울다가 웃는 홍진경이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해맑은 홍진경 짤 등 수많은 짤이 등장한 예능이니 홍진경 팬이라면 꼭 봐야할 예능!
지금까지 홍진경 짤을 OTT로 다시 만나보았다. 강행군 속에서도 웃음을 만드는 그녀는 진정한 프로였다. 홍진경의 가장 큰 무기는 '편안함'이다. 자극적이지 않게 웃음을 만들 줄 안다. 이는 계산적이지 않고, 외려 본능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진경은 '공부왕'은 아니더라도 '찐천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 속에서 도래한 홍진경의 제2의 전성기는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겠다. 홍진경 전성시대가 오래 지속되길, 그녀의 팬이자 밈을 사랑하는 리뷰어로서 홍진경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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