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일을 맞이해서 많은 지인들에게 축하받았다. 대부분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람들이었지만, 몇 년간 교류가 없었는데 반갑게 축하해 준 인물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매 년 축하 인사를 주고받던 인물이 올해는 없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날 놀라게 한 주인공 중 한 명은, 중학교 ‘학주 쌤'(학생 주임 선생님)이었다. 내가 2G 휴대폰에 저장한 이름이 아이폰 화면에 그대로 뜬 것이다. 유독 나를 잘 챙겨 주시고 내가 잘 따르기도 했던 선생님이다. 선생님께서는 '수현이 맞나’라는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로 시작해서, 울산의 한 중학교의 교장선생님이 되셨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래 수현아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그리고 건강해라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다.’라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저 텍스트인데도, 어디선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괜히 뭉클했다.
선생님을 중학교 졸업식 이후로 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실은 내가 모교에 방문하지 않은 탓이다. '몇 년 전이었더라-.' 까마득하게 잠겨 있던 시간 속에는, 무려 선생님과 나 사이의 12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여전히 중3의 수현을 바라보듯, 투박하지만 다정함이 묻어난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이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생일 축하는, ‘올해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내 기준보다 그 사람에게 특별한 신경을 쓰거나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음에도 장문의 편지와 선물을 받게 되면,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몰려온다. ‘내가 과연 이 사람에게 어떤 미미한 영향이라도 줬던 순간이 있긴 했던가?’ 또는 ‘내가 정말 이런 선물을 받을 만큼 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던가?’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기보단, 이런 정성에 대한 보답으로 내년에는 미안함보단 유쾌한 감사함이 들게끔 노력한다. 시간을 내서 나를 생각해 준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며 '나 정말 잘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받은 편지보다 더 큰 진심을 꾹꾹 담아 쓴 답장을 남기곤 한다.
반면, 작년에 함께 웃고 떠들었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올해는 멀어진 인물들이 있다. 그러면 이번엔 멀어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올해는 왜 이 사람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을까?’ 대부분의 원인은 갑자기 달라져 버린 환경이지만, 들여다보면 12개월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사이에 달라진 각자의 생각이나 가치관, 그 차이로 조금씩 벌어진 서로의 틈도 영향을 끼친다.
사실, ‘멀어졌다’는 표현은 다소 광범위하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나와 내 주변 관계를 우주에 비유하자면 ‘나’라는 행성 중심으로 떠도는 위성들이다. 지금 당장은 멀리 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충돌할 만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반대로 늘 주변을 맴돌다가도 한순간에 다시는 못 볼 만큼 저만치 멀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마치 고무줄과 같아서, 주기적으로 팽팽함과 느슨함을 반복한다. 한 명이 힘을 빼면 고무줄은 즉시 탄력을 잃고, 손에서 놓으면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느슨해진 만큼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다. 그와 달리, 한 명 또는 양쪽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해 힘껏 잡아당기면 고무줄은 팽팽해지다 못해 끊어진다. 그러면 두 명 모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엉덩방아를 찧을 때도 있다.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는 순간, 반강제적으로 고무줄의 양 끝을 잡는다. 그리고 얼마큼 당기거나 놓아야 하는지 아무도 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놓쳐 버린 고무줄을 동시에 잡으려다가 머리를 박든, 너무 세게 당기다가 끊어져서 넘어지든 하나도 우습지 않으며 유치하게 놀릴거리도 아니다. 사람과의 문제에서는 시행착오가 당연하므로, 전혀 정답을 가리거나 답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예전의 나는, 이러한 '관계의 고무줄 속성'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일희일비했다. 멀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이유를 몰라서 연연했고, 가까워진 사람에 대해서는 한순간에 잃을까 봐 연연했다. 그런데 이제는 팽팽함과 느슨함의 성질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끼다 보니, 매해 변하는 나와 주변의 관계를 하나의 이벤트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에게 인간관계로 고민을 털어놓는 지인들에게도 똑같이 이야기 해준다. 상대방이 줄을 놓쳤을 땐 씩씩하게 손에 쥐어줄 수도 있는 거고, 때에 따라서는 잡아당기거나 힘을 빼면서 완급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유독 생일이나 결혼, 죽음 등 특정한 날에 관계의 변화가 피부로 느껴질 뿐인 거지,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내 주변 관계는 바쁘게 변화 중일 것이다. 이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 간의 탄성 변화를 한 발자국 떨어진 채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