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3월의 주말에
친구로부터 한 여자를 소개받기로 한다.
이름은 낯설지만
이따금씩 작은 영화에 나온다는 그녀.
궁금증을 못 참고서
그녀를 담은 작품을 몇 편인가 찾아낸다.
늦은 밤 턱을 괴고
나와는 별 인연이 없던 세상을 본다.
아 모르는 사람을 본다는 것이
이리 가슴 뛰는 일이었는지
난 내 무릎을 안은 채 웅크린다.
마치 영화관에 처음 갔을 때처럼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눈여겨보게 된다.
...
어느 3월의 주말에
그녀는 내게 정말 말씀 많이 들었다면서
묘한 웃음을 짓고
갑자기 내 얼굴에 눈부신 조명이 비춘다'
가을방학 / <여배우> 가사 中
가끔 찾아 듣는 노래, '가을방학'의 <여배우> 가사 일부다. 노래의 주인공은 여자를 소개받기로 하는데, 그 여자는 아마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은 밤새 그녀가 나오는 작품을 찾아보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깊어져간다. 아마도 그녀의 세상은 어떨지 떠올려봤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자신과 비슷한 구석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전, 주인공은 여자에게 완전히 스며든다.
이 노래가 문득 떠오른 이유는,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궁금증과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일어나는 감정의 파동이, 우리가 에세이를 읽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에세이를 읽을까? 어느 날은 SNS에서 ‘나는 에세이를 읽으면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만 같아 끝내 덮어버린다’라는 댓글을 본 적 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TMI 폭발일 수도 있는 장르인 것이다. 그런데도 왜 누군가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읽을까.
언젠가 지인 A는 내 글을 읽고 이렇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수현 님 글은 내 감정이 만져지는 느낌이 나요.' 나는 메시지를 캡처해서 하트를 찍은 뒤, 앨범에 잘 간직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1년 동안 깊이 숙성되던 중, 드디어 오늘 빛을 발했다.
에세이를 읽기 시작하면, 처음엔 글쓴이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생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거나 결이 같은 경험을 발견하면 공감과 위안을 느끼고, 더 나아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글쓴이와 유대감이 쌓여 그의 안녕을 빌기도 한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동하는 것 외에도, A가 말해준 것처럼 그동안 내가 평소에 추상적으로 느끼고 생각해 왔지만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 것들을, 그 사람 고유의 어투와 일상 언어로 날카롭게 짚어주기도 한다.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이 이런 형태일 수도 있겠구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문장이 보이는 순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도 내가 많이 묻어 있는 글을 쓰는 걸 즐긴다.
누군가에겐 자기소개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처방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기장일 수도 있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내 글이 새로운 세상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건 참 경이롭다. 마치, <여배우> 가사 속 주인공이 처음 본 사람의 얼굴에 눈부신 조명이 비치는 전율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