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남편은 은퇴 후에 농사를 짓고 싶어 한다. 우리 부부는 농촌에서 농사꾼 부모 밑에서 자랐다. 시골에서 자랐다고 해도 농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는 남편이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농사짓는 일이 무척 고되다는 것이다. 친정 부모는 딸들이 당신들처럼 농사일하며 힘들게 살까 염려하여, 그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딸들에게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동안 주말농장 회원으로 가입하여 상추를 비롯한 쌈 채소들은 길러 먹은 적이 있었다. 고구마나 무도 심어 먹었다. 그러나 남편이 원하는 그림은 주말농장보다는 규모가 큰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강도가 세질 것이다. 그 힘든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을까. 그게 무엇보다 걱정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은퇴 후에 농사짓는다며 땅을 보러 다녀도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은퇴가 가까울수록 땅을 사서 농사짓겠다는 남편의 열망은 불타오르는 듯했다. 베란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늙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굴었다.
집안 살림을 하다 보면 지루할 새가 없이 시간이 참 잘 간다. 그러나 남편처럼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의 시간이 무척 더디 갈 것이다. 남편은 무척 부지런한 편이다.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깬다. 주말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런 남편이니, 하루 24시간 중 ‘깨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고민일 수도 있다.
백세시대라 한다. 따라서 은퇴 후의 삶이 길어졌다. 예전에는 환갑이 넣으면 뒷방 늙은이로 취급받았었다. 따라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은퇴하고도 한참이나 더 살아야 한다. 길어진 노후는 한편으로는 축복이지만, 이전 세대가 고민하지 않았던 고민거리를 주었다.
나도 나름대로 준비한 노후, 꿈꾸던 노후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상상해 왔던 노후와는 거리가 먼 노후를 꿈꾼다. 내 꿈이 소중한 것처럼, 남편 꿈도 소중하다. 그러나 너무나 다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합의점을 찾을 수는 있을까. 많은 부부가 이런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사춘기 때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한 적이 많았다. 오히려 결혼하면서 일상이 바빠지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덜 고민했던 것 같다. 이제 가까이 다가온 노후가 사춘기 때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을 안겨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