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밀라논나

나와 우리를 위하는 멋진 어른이 되자

by 친절한금금


최근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이라는 책을 읽었다. 장명숙이라는 이름보다 밀라논나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이 할머니는 유튜브의 인싸다. 패션업계에서 꽤 오랜 세월을 일한 밀라논나의 책을 읽으면서 화려함보다는 나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살필 줄 아는 멋진 어른을 보았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나만의 밀라논나가 떠올랐다.


2학년이 되고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청소를 위해 정해진 구역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언니들이 있었지만 청소를 위해서 나가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한 학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외동딸로 자랐고 3살 터울 사촌언니에게도 반말을 하며 지냈던 나는 높임말을 쓸 줄 몰랐다. 3살 위에 언니에게도 격이 없이 지내는데 한 살 많은 게 대수일까?


그런데 이 언니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반말을 하면서 이야기한 나를 꾸지람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겁을 주었다. 텅 빈 화장실에 데려가기도 했다가 모두가 집에 가고 없는 교실에서 벽에 나를 밀친 뒤 빙 둘러 세웠다. 지나가는 선생님이 있었지만 소리를 내면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겁을 주는 언니들 틈에서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못하고 있어야 했다.


뺨을 몇 대 맞고 그들의 틈에서 겁을 먹고 얼어붙어 있던 나는 겨우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에는 친구가 나를 꽤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고 있는 나와 친구를 지나가던 어른 한 명이 붙잡고 물어보았다. “네가 얘를 괴롭힌 거니? 너희 학교 어디야? 이름이랑 반이랑 얘기해봐” 괴롭혔다면 옆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지만 당장 앞으로 어떻게 학교를 다녀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나는 더 이상의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상한 아저씨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하염없이 걸었다. 같이 걸어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친구는 정말 단 한마디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냥 곁에 있어주었다. 울고 또 울어도 그치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이제 학교를 옮겨야 하나, 나는 어떻게 살지’ 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두 시간을 넘게 걸어서 집에 도착했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았고 엄마에게 속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반말을 한 것은 잘못한 일이니 사과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다.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언니들이 내 뺨을 때리고 나에게 무섭게 했다는 사실을 내가 말하지 않았던 거겠지? 엄마가 걱정하실까 싶어서 부정적인 이야기는 섞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순히 사과만 하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


다음 날 나는 언니들의 반에 가서 사과를 했다.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해코지를 당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들이 있었다.


길가에서 만났던 이상한 아저씨는 알고 보니 교육청 직원이셨다. 교육청 아저씨의 빠른 대응으로 담임선생님에게 나와 관련된 연락이 닿았다. 당시 학생 주임이기도하셨던 담임선생님은 오랜 연륜만큼 학생들의 마음이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빠르게 일을 해결하셨다.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들은 바가 없지만 어떻게 학교를 다녀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안심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신뢰를 주셨다. 온전히 나에게 신경 써주시는 선생님을 뵈니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담임 선생님은 입담도 좋으시고 카리스마가 넘치셔서 수업시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신뢰가 쌓이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공부에 대한 의지가 샘솟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밑바닥에 있었던 성적이 경사지게 오르더니 이내 상장까지 받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냥 상을 줄 법도 하지만 유독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박수를 받게끔 하셨다. 그 한 번의 느낌이 잊히지 않아서 일까? 나는 더 많은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선생님께 다시 한번 이름이 불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어른이라고 치부했지만 교육청을 벗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보이고 해결하려고 나서 주셨던 교육청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이 일을 알고서 적극적으로 발 벗어나서 주시는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겁이 많았던 나는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서 학교를 전학하는 방향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서서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울 수 없었을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나는 좋은 어른을 만나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어른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만 많은 것은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워왔던 것을 베풀 줄 알 때 진정한 어른의 역할이 되는 것 같다. 밀나논나는 현재 유튜브를 진행하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패션 상식으로 자라에서 명품 같은 옷 고르기 등과 같은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고민 상담을 해주는 <논나의 아지트>를 운영하고 있다. <논나의 아지트>를 보면서 저런 조언과 격려는 삶을 거쳐오면서 알게 된 지헤라는 것이 엿보인다. 내가 가진 것을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밀라논나처럼 주변을 위해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만큼이나 소외되고 어려운 주변을 돌볼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고 싶다. 나는 아직도 부족한 어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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