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포진. 지긋지긋한 이름이다. 겪어 본 사람이라면 손에 한포진이라는 습진을 달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이다.
백설공주처럼 뽀얘야 하는 손바닥은 얼룩덜룩 구적물을 묻힌 것 같은 흉으로 가득했다. 논바닥처럼 갈라진 손바닥은 끝내 찢어져 피가 고이기 일쑤였다. 가만히 놔두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벅벅 긁다 보면 살 껍데기가 벗겨지고 수포가 터져 물집으로 젖어 산 지 18년이 지났다.
그때는 몰랐다. 실험실 생활을 하며 매일 시켜 먹던 배달음식과 밤낮이 뒤바뀐 생활은 면역체계를 교란시켜 손바닥에 비상신호를 보낸 것이다.
강한 스테로이드를 바르거나 약 먹으면 불난 손에 찬물을 끼얹는 듯 한포진에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불씨까지 꺼뜨리기에는 부족했다. 선배들과 술을 마시며 몸속에 연료를 충전해 주면 활활 타올라 손바닥은 다시 불에 덴 듯 열이 나고 간지럽기 일쑤였다.
지긋지긋하던 18년 동안 한포진이 딱 두 번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임신했던 2년간은 이게 내 손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들만큼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출산을 하고 미역국을 먹을 때만 해도 괜찮던 손을 긁기 시작한 건 아이를 재우고 치킨을 한 입 물었을 때였다.
음식이 손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알았지만 인생의 쓴 맛을 미각으로 달래주는 맥주와 세상에 모든 기름진 음식을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이 모든 건 호르몬 탓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니 육아로 힘든 나는 술을 마시며 노고를 치하해도 된다며 매일 한 캔 씩 내 몸에 노란 독약을 부었다.
손 만 탈이 나면 되는데 어느새 생리 기간이 다가오면 변비가 심해졌다. 커피와 맥주를 물보다 많이 마셨으니 수분이 부족한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두 달 전 건강검진에서 게실이 발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형 센터에서 받은 검진은 메일로 간략히 내 몸의 상태를 설명했다.
"대장에 게실이 있습니다. 복통, 혈변 등이 발견될 시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아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평소와 같이 살았다. 게실로 인한 다량의 출혈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어쨌든 게실 출혈로 인한 입원과 수혈을 거치면서 앞으로의 식생활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입에도 데지 말아야 할 것은 물처럼 마시던 맥주였다. 게실염은 아니었지만 체내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술은 되도록 자제할 것을 당부받았다. 반대로 많이 먹어야 할 것은 고식이섬유 식단이다. 게실증에는 변비만 조심하면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야채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게실증은 피가 터져 나오거나 염증으로 인한 심한 통증이 아니면 심각성을 모른다. 반면 식단 조절로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손에 있는 한포진이었다.
아직도 손에 자국들은 남아 있지만 찢어진 곳도 없고 각질화로 딱딱해진 피부도 아니다. 가려워서 매번 손을 꽉 지고 비틀다 긁어 피나던 손에서 탈출해 나가고 있다.
식단의 변화는 임신했을 때와 거의 유사했다. 그때도 술은 입 근처도 가져가지 않았으며 오메가 쓰리와 유산균, 엽산을 꼭 챙겨 먹었다. 영양제 챙겨 먹어봐야 소용없다며 30대를 보냈지만 아프니까 마흔살인 요즘은 프로폴리스와 비타민 D 등을 챙겨 먹고 있다.
한포진으로 고통받을 때는 죄다 염증을 유발하라고 쏟아 넣은 재료들 뿐이었다. 피 쏟으며 아프고 나니 가장 문제시되던 술을 끊어 냈다. 과연 한포진이 잠잠한 게 식단의 변화로 인한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인풋과아웃풋이 뚜렷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지언정 고쳐 쓸 수 있는 몸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야채와 내 몸이 좋아하는 물 섭취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