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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힘

by 친절한금금

별 거 아니겠지 시작했던 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때 혹은 끝을 알 수 없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막막함, 답답함 등에 짓눌러 포기라는 두 글자가 가슴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친정의 싱크대 상하부장 시트지가 딱 그랬다. 시공을 위해 남편과 시트지를 들고 친정에 갔다. 두 시간이면 끝날 작업으로 알고 시작했는데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이 새벽에 돼서야 끝이 났다.

하부장 서랍문 하나를 하면서 이미 두 시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반드시 오늘 안에 장모님 싱크대를 모두 바꿔 놓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있었다.

탄탄한 목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가능케 만든다. 허리를 구부렸다 펴는 일의 반복으로 지쳐도 칼에 손을 베어 아픈 상황에서도 목표를 위해 자신을 다독이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뚜렷한 목표'에 근거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일을 수행하다 보면 부작용이 따라오는데 바로 '번아웃'이다. 남편의 계획은 처갓댁 싱크대 시트지 작업을 마무리하면 우리 집 싱크대도 시트지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목표를 수행하고 나니 얼얼해진 두 손을 들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포기했다.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있다면 하루에 한 짝 씩 작업을 하면서 한 번에 해내려는 수고를 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최근 '아이가 글쓰기를 잘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있다. 글쓰기 선생님이 지정해 준 책을 매일 두 페이지씩 작성하는 것이다. 필사를 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는 일은 아이에게 벅찼다. 저녁에 해야 할 숙제가 많은데 엎친데 덮친 듯 글쓰기를 시키니 마음으로 글을 적는 게 아니라 손으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육십일 동안 매일 두 페이지씩 아이를 이끌어가기 위해 선택한 것은 조금씩 미리 하는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먼저 시작했다. 잠이 깰 뿐 아니라 시간적인 여유도 있어서 아이도 엄마도 부담이 없었다.

아이의 습관 형성과 십 분이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경험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영어 공부에 미련이 많아 <입이 트이는 영어>를 녹음해서 인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일상에 치여 일주일치를 녹음해서 올리기 일쑤였다. 하루에 십 분만 투자하면 되는데 중요도에 밀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밀린 것이었다.

딱 십 분이면 되었다. 그것도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십 분이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 혹은 아이가 글쓰기 숙제를 할 때 영어 음원을 듣고 공부한 뒤 녹음을 하고 올렸다. 숙제로 생각하고 미뤄뒀던 일을 해치우고 났더니 작은 성취감에 휩싸여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 차올랐다.

기세를 몰아 십분 책 읽기에 도전했다. 글 쓰기는 좋아하지만 빈 깡통 같은 머리만 굴리며 허덕일 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시도하지 않았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힘드니까 조금 쉬고 싶은데, 인스타에 이거 하나만 보고 하자 했던 날들이 무수하다.

그러다 발견한 밀리의 서재 챌린지에서 하루 십분 독서를 발견했다. 집중 모드를 켜고 십분 동안 책을 읽는다. 삼분의 일가량 읽다가 멈춰있었던 책을 십분 독서로 완독을 했다. 이제는 다른 책도 핸드폰의 타이머를 켜고 십 분간 읽고 있다. 재미있으면 십 분을 넘어서기도 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찝찝했던 책 읽기가 해결되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임에 틀림없다. 올바른 방향설정 만 있다면 돌아가든 천천히 가든 중요하지 않다. '나만의 속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속도에 중심을 두고 과속으로 엔진을 태워버리기보다는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내 길을 달려가자.

막막한 일에 두려워하기보다는 이까짓 거라는 생각으로 하루 십 분이라도 '해'보자. 일단 하면 달라진다. 시작해야 길이 보이고 어떻게 갈지 생각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움추르고 미뤄둔 일이 있다면 '하루 십분'을 생각하고 일단 시작하길 바란다. 자기 효능감(특정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 별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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