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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구걸했던 나

by 친절한금금


누구나 삶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네 가지 감정을 선물처럼 받는다. 희로애락이라 불리는 말에서 '즐거울 희'만 외치고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방에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열린 두 눈과 두 귀는 주변을 향해 안테나를 세운다.

내 인생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데, 나만 빼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돈, 명예, 외모, 남편, 자식 등 상대와 저울질하기 위해 올려놓을 수 있는 무게추들은 무궁무진하다.

'왜 나만 이러고 살고 있지?'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 채울 때, 우울감은 한순간에 밀려와 슬픔의 댐을 열고 나를 휘몰아친다.


-데이식스 <HAPPY> 가사 중 일부

그런 날이 있을까요?

마냥 좋은 그런 날이요

내일 걱정 하나 없이

웃게 되는 그런 날이요


뭔가 하나씩은

걸리는 게 생기죠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있을까요?

꿈을 찾게 되는 날이요

너무 기뻐 하늘 보고

소리를 지르는 날이요


뭐 이대로 계속해서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요


May I be happy?

매일 웃고 싶어요

걱정 없고 싶어요

아무나 좀 답을 알려주세요


So help me

주저앉고 있어요

눈물 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발요

Tell me it's okay to be happy


알고리즘엔 잘된 사람만

수도 없이 뜨네요


뭐 이대로 계속해서

살아만 있으면 언젠가

저런 날이 올까요


그냥 쉽게 쉽게 살고 싶은데

내 하루하루는 왜 이리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건데


뻔한 사랑이야기는 이십 대에 흘려보냈고, 열정 가득한 미래를 노래하는 말들도 혈기왕성한 십 대에 두고 온 지금, 마흔에 들어 선 내게 이 노래가 들려왔다.

데이식스라는 가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열 번이 곱절이 될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멜로디보다 가사에 취했다. '매일 웃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비참해지는 내 모습을 보고 움츠려 드는 감정이, 누구나 느끼는 것임에 위안을 받았다.

상대성이라는 건 양면성이 있다. 한 편으로는 저보다 잘난 모습에 지금의 내가 비참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저 사람도 그렇구나 공감대를 형성하며 위안을 삼게 된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나만의 슬픔, 나만의 불행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허우덕 거릴 때,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굳이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자기 연민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이는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행복을 구걸하지 않는다.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을 들으며, "행복해져라 제발 행복해져라" 외쳤던 어제가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다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는 스페인 속담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은 아닐까. 데이식스의 <HAPPY>의 가사처럼, 매일 웃고 걱정 없이 살 수 없다. 행복의 진수는 불행과 함께 오기에, 오늘도 닥쳐올 수 있는 불행에 낙담하고 조급하기보다 분명히 뒤에 다가 올 행복을 여유롭게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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