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에 결혼한 나는, 결혼한지 석 달 후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신혼의 여유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또래 친구들에 비하여 이른 시기,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첫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워킹맘이었다. 출근을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외출 준비와 함께 먼 거리 직장에 늦지 않게 출근하기 위해, 잠에서 덜 깬 첫째 아이를 반강제로 깨워 제대로 된 아침도 못 먹인채 서둘러 등원을 시켜야 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주지도 못한 채 출근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죽어라 뛰어 겨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로 가득찬 지하철 안에 몸을 폴더처럼 구겨넣듯 비집고 들어가야 했다. 그리곤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일에 몰두했다. 칼퇴근을 위해 여유부릴 틈도 없이 바쁘게 업무를 처리 해 나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시간이 되면, 상사 눈치, 옆자리 직원들 눈치를 보며 마치 죄를 진 듯이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게 빠져나와야했다. 그리고는 또 뛰었다.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있는 우리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야 참았던 숨을 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집에 가자마자 육아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의 20대 후반을, 우리 아이의 소중한 어린 시절을 흘려 보냈다. 참 가슴아팠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다시 떠올려 보아도 나는 절대 게으른 사람은 아닌듯 했다. 그 누구못지 않게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 잠자는 시간은 매일 5시간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을, 이른 새벽 5시에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루동안 오로지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직장’과 ‘아이’만을 생각하며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하루하루들이었다. 그 하루 속에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나를 위한 시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모두가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엄마’라면 다 똑같을 줄 알았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바쁜 삶 속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찾아 볼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오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된통 혼이 났다.
매년 주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내 몸 속에, 내 목, 갑상선에, 암 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당연한 듯 일과 육아에만 전념하며 열심히 살아온 탓에, 내 몸과 마음은 돌보지 않은 탓에,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병이 생겨버렸다.
암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워킹맘으로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오는 삶 속에서 늘 그리고 꿈꿨던 전업주부의 생활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삶은, 내 생각만큼 여유롭고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아이와 거의 모든 하루를 붙어 있는 삶은, 즐거움 보다는 육아와 살림에 지친 몸과,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을 선사 해 주었다.
워킹맘이던, 전업주부던 상관없이, '엄마'라는 존재에게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