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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Dec 17. 2021

서울에서의 단상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여름까지 1년간 대구집을 떠나 서울에서 일을 했습니다.


공간이 주는 힘     


대구 집을 떠나 서울 집에서 살게 되면서, 나는 남편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공간이 갖는 위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의 변화로는 남편이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적어도 주중에는 남편이 나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과 떨어져서 살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남편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다. 남편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나에게 잔소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아냥을 듣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책망을 듣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남편의 냉정한 눈길을 받지 않아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눈길을 느끼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거리가 주는 힘, 그리고 나만의 공간이 주는 힘은 아주 컸다.


설거지거리가 컵 한 개뿐     


토요일 밤, 난 서울대 생활관에 있다. 약간 피곤해서 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생각해보니, 설거지거리가 컵 한 개뿐이다. 아침에 세탁기에 돌린 빨래들은 빨래건조대에 걸려 있다. 다 말랐을 것이다. 셔츠 한 벌, 수건 하나, 손수건 하나, 양말 세 켤래 등 빨래래야 얼마 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서 지금 내게 아무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몹시 행복해졌다. 잠자리에 들 시간까지 남은 한두 시간.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데서 오는 이 여유로움과 행복. 가사노동의 억압이 싹 걷힌 것만으로도 숨쉬기 편하다.

지금 집에 있다면,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한가득 쌓여 있을 것이고, 빨래 바구니에는 빨래가 한가득일 테지. 쓰레기통은 가득 차 있을 것이고, 곳곳에 정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있겠지. 나는 게을러서 당장 일을 하지도 못하고, 마음은 불편해하고 있겠지.

잠들기 전까지 기껏해야 한두 시간이 있을 뿐이지만,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까 궁리한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그냥 행복해하자. 행복하다.      

    

하루 한 시간이 남는다     


대구 집과 서울 집에서의 생활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하루 한 시간이었다. 대구 집에서는 매일 한 시간이 모자랐다. 한 시간이 더 있다면 밀린 설거지를 하고 밀린 청소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 집에서는 매일 한 시간이 남았다. 업무도 마치고 일상생활도 마치고, 그러고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시간이 매일 한 시간이 남았다. 그 한 시간이 있어서 어떤 날은 행복했고 또 어떤 날은 외롭고 쓸쓸했다.           


드라마가 재미있다     


퇴근해서 생활관에 와서, 밥을 먹었다. 집에서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밥을 프라이팬에 데워서 먹었다. 집에서 가져온 돼지고기를 구워 김치를 곁들여서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서 유튜브로 ‘내 남자의 여자’ 드라마를 보았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몰입이 너무 잘 된다. 흡인력이 대단한 드라마다. 어쩜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지. 밥을 먹고 치우지도 않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드라마를 본다.

대구 집에서라면 남편이 켜 놓은 TV에서 방영되는 스포츠 중계를 보거나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유튜브를 관심이 없으면서 오며 가며 보고 듣고 있겠지.

서울 집에서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실컷 본다.

이것이 행복일까. 나는 내가 이렇게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아니, 알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런 나 자신을 잊고 살게 했다.       

   

남편이 고맙다     


서울 집에서 생각해 보니, 남편이 고맙다. 대구 집에서 수없이 남편을 원망했던 내가 서울 집에서는 수시로 남편이 고맙다.

남편은 나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해 주었다. 행시에 미련을 못 버리던 나에게 행시에 미련을 버리고 대학원 공부를 하라고 권유해 주었던 것이다.

박사과정 입학시험을 보던 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서울대에 갔다. 내가 입학시험을 치르는 동안 남편은 돌 무렵이던 아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려 주었다.

석사과정 중에 결혼을 하고, 석사과정 중에 첫째를 출산하고, 박사과정에 입학하고 둘째를 출산해서 결국 경산 집에서 서울로 통학을 해야 했었다. 남편은 나의 통학에 필요한 기차표를 꼬박꼬박 끊어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는 서울에서 오전 수업을 들어야 해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때 남편은 나의 통학을 위해서 비행기표를 꼬박꼬박 끊어다 주었다.

그리고 남편은 나의 대학원 등록금을 대 주었다. IMF로 인한 아주버님의 사업실패로 우리 집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편은 나를 위해 등록금을 대 주었다.

남편은 업무를 마치고 매일매일 운동을 했다. 서울 집에서 생각해 보니, 남편이 운동을 해 준 것이 참 고맙다. 운동을 해 준 덕분에 남편은 여태껏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참 알뜰한 사람이었다.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신을 위해서 사치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편이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해 주어서 고맙다.

서울 집에서 바라보니, 남편이 고맙다.      


눈만 뜨면 가족을 볼 수 있었구나     


센터 근무를 마치고 중앙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그리고 생활관으로 오는 길. 어둑어둑한 숲을 지나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아본다. 아무런 마음의 근심 없이 홀가분하게, 지난겨울을 지낸 낙엽의 촉감을 느끼며 행복에 겨워하다가 문득 외롭다고 느낀다. 대구 집에서 늘 가사노동이 많아 힘겨웠는데, 남편의 잔소리로 힘들었는데, 돌아보니 가족들에 둘러 쌓인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눈만 뜨면 가족을 볼 수 있었구나. 행복한 시간이었구나.

다양한 형태의 행복이 있구나. 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형태의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한 번에 하나의 행복을 누린다. 그리고 그 행복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번에 다른 형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겠지.         


관계의 변화     


서울 집에서 대구 집의 막내에게 전화를 건다. 저녁을 먹었냐고 물어보니, 형이 카레라이스를 요리해서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형이 요리를 하는 동안 너도 거들었냐고 물어보니, 막내는 양파를 까고, 야채를 볶는 동안 야채가 타지 않도록 야채를 젖는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막내가 깜짝 놀란다. “빨래를 걷어야 하는데! 비가 온다고 하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은 내가 했던 말이다. 그런데 지금 막내가 그 말을 하고 있다.

내가 집을 나오자, 대구 집에는 남자 세 명이 살게 되었다. 남편과 첫째, 그리고 셋째. 이들은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빨래를 돌리고 넌다.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가사노동 분담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은 내가 집을 나오니까 모든 일이 저절로 되는 것 같다.)

이후 첫째가 호주로 워킹 홀러데이를 떠났고, 셋째가 군에 입대하면서 남편이 혼자 대구 집에 남았다. 남편이 드디어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법을 내게 물었다. 이런 시간이 오는구나.    

 

약간의 외로움: 맥주 한 캔     


약간의 외로움이 있었다. 퇴근하고 생활관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설 때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지고는 했다. 대구 집에서는 너무 많은 일들, 너무 많은 자극들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 집에서는 생활관에 돌아왔을 때, 내가 잠들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 무료한 시간에 굳이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시면서 부족한 자극을 메우고는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맥주를 사는 것도 버릇이 되겠다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맥주를 사는 대신, 맥주를 사는 기분으로 보리차 같은 음료를 샀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생활관에서 생활한 지 반년쯤이 지난 지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몸이 너무 편해서일까. 그러면서 문득 눕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던 시간을 돌이켜보고, 그때가 행복했구나 생각한다.

난 늘 치열하게 돌아가던 그 시간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겨웠고, 정신적으로 늘 긴장상태였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오늘 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일어나 앉고서는, 그 고통스럽던 시간을 그리워한다.


놀이와 노동     


물에 담가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잡곡 한 컵을 작은 프라이팬에 담아서 끓인다. 그리고 퇴근길에 사 온 두부를 잘라서 끓고 있는 잡곡 사이에 담근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밥이 되기를 기다린다. 일종의 ‘두부밥’이 되겠다.

나 자신을 위해 저녁을 짓는 일이 놀이 같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대구 집에서의 요리는 왜 한 번도 놀이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언제나 고달픈 노동으로 여겨졌을까.

두부밥이 다 되었다. 아무런 반찬 없이 밥을 먹어본다. 잡곡이 오독오독 씹힌다. 두부에는 잡곡 물이 들어서 빨갛기도 하고 검기도 하다. 밥만 먹는데도 맛있고 즐겁다.

요리를 하는 일은 원래 놀이 같은 것이었구나.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어쩌면 이렇게 요리를 놀이로 경험하기도 전에, 요리에 대해 부담스러운 일로 경험을 했구나 싶다.


당신 때문이다 그리고 나 때문이다    

 

남편은 종종 내가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고 비난한다.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난한다.

곧 군대에 입대하게 된 막내와 스튜디오에 가서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겠다는 계획을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은 역시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비난했다. 요즘 누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느냐고 하면서.

오늘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다. 당신이 늘 쓸데 있는 것들을 모두 처리해 주기 때문에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할 수 있다. 모두 당신 때문이다. 아니 당신 덕분이다.

그리고 나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을 했지만, 나는 늘 비정규직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일과 돌봄을 병행하느라 고달팠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 때문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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