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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13. 2021

그 많은 마늘은 누가 까주었을까요

가사노동의 고단함에 대해 잔뜩 불평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나의 대학원 동기인 K 교수님이 이런 댓글을 달아 주었다. “한 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저 꽃들과... 하늘 아래 이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그런 것 같다. 그 누구도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명확한 사실을 나는 깜빡깜빡 잊는 것 같다.

나는 아내 노릇을 하면서 학자 노릇 하는 게 무척 고달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이 두 가지를 근근이 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위해 희생해 주신 가족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얼마 전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마늘을 깠다. 참 힘들었다. 결혼 생활 20년이 넘도록 마늘을 까면서 이렇게 땀을 흘려 보기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마늘을 참 많이 먹었는데, 그 많은 마늘은 누가 까 주었지? 바로 나의 시어머님이시다. 어머님께서는 마늘을 까서 갈아서 얼려서 내게 보내 주셨다. 요리를 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마늘뿐만이 아니라 청양고추와 홍고추도 잘게 다져서 얼려서 보내 주셨다.

내게도 아내가 있었던 것이다. 주말마다 반찬을 해서 갖다 주시던 어머님. 매년 5월쯤이면 이불을 갖고 가셔서 빨아서 다시 꿰매서 보내 주시던 어머님. 박사과정 중에 주말마다 아이들 데려가셔서 내가 과제를 할 수 있게 해 주시던 어머님. 내가 학교 다녀오면 집안을 대청소를 해 놓아 주시던 어머님. 내가 서울에 논문 심사받으러 가 있던 5개월 동안 집에 오셔서 아이들 먹이고 입혀 주신 어머님. 내게는 그런 아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내 자리가 힘든다고, 남편이 몰라준다고 서운해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나의 아내가 되어 주셨던 어머님의 노고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제사가 있던 어느 날 시댁에서 어머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당신의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때 너무 힘든 시간이 있어서, 우물에 뛰어들려고 했다고 하신다. 그런데, 당신이 죽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에 죽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알게 되었다. 어머님께서 그때 우물에 뛰어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내가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다른 어떤 분이 있어서 내 공부를 그토록 열렬하게 응원해 줄 수 있었을까. 어머님은 당신께서 못 배운 한이 있다고 하시면서, 며느리인 나의 공부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객지에서 사는 딸이 얼마 전 주말에 집에 와서, 할머니표 마늘종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표 쥐포 조림과 미역국도 먹고 싶다고 했다. 객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하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 등을 먹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집밥이 그리운 것 같았다. 그리고 딸에게 있어서 집밥은 바로 할머니의 반찬과 함께 먹는 밥인 것 같았다. 어떤 날, 내가 미역국을 끓여 내어 놓았을 때, 막내는 먹어 보고는 제법 맛있다고 하면서, 할머니 미역국 맛이 난다고 했다. 첫째는 집에서 김치를 먹을 때마다 감탄을 한다. 할머니 김치는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어머님의 그 노고는 어떻게 보상을 해 드릴 수 있는 것이지? 평생에 걸친 자식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지? 어머님의 사랑이 이렇게도 큰 것이었구나. 그런데, 나는 나의 아내가 되어 주시는 이의 노고를 ‘사랑’이라는 한 마디로 퉁 치는구나. 그 많은 마늘을 까 주시고도 한 번도 생색낸 적이 없으신 나의 아내, 어머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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