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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희 May 14. 2021

섬세한 진보(발전)

여성들의 신체적 특성 및 사회적 특성에 부합하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신체적 특성 및 사회적 특성과 그에 따른 요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여성들을 위한 지식이 적극적으로 창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가장 잘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여성 자신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많은 지식과 노하우들이 사실은 남성들에 해당하는 것인 것 같고, 여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과 노하우들을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발굴해내야 하는 것 같다.

학창 시절에 행정고시 공부를 오래 했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헌법, 행정법, 민법총칙 등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 공부도 좀 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은 내가 공부했던 개념과 이론, 그리고 사상은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또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지원(돌봄)을 전제로 해서, 주장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존경했던 교수님의 수필집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의 한 꼭지에서 아내에 대한 마음을 써 놓으셨는데, 교수의 아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써 놓으셨다. 그분의 많은 강의를 들었고 책을 읽었지만, 결국 그분이 설파하신 주장은, 아내의 삶에 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또 다른 한 원로 교수님은 먼저 돌아가신 자신의 아내에 대해서 회상하면서, 아내가 자신의 일을 돕는 것을 보람 있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의 전제는 아내와 자신은 대등한 존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아내를 대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어떤 남성 교수가 쓴 글이 역시 아내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남성 구루(guru)들의 '초월적' 지식을 동경해 왔지만, 해결해야 할 자기 문제를 가진 사람은 현실로부터, 일상으로부터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정희진의 말에 공감이 되는 것이다.

남편도 어쩌면 평생을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통제 가능한 어떤 대상으로 보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로는 무서운 인상으로, 때로는 독설로, 나를 순응형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가부장제 속에서 산다는 것은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최종의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행정법학의 용어로는 아내인 나의 결정이 확정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이슈와 관련해서 최종 결정권자는 남편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 자기 계발서, 종교적 가르침을 여성이 섭렵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남편이 여성을 대신해서 결정을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에 대해서 남성들은 관심이 없다.

'너무 성실해서 아픈 당신을 위한 처방전: 굿바이 번아웃'의 저자인 파스칼 샤보는 사회적 진보를 '유용한 진보'와 '섬세한 진보'로 구분하고, 사회에는 자본에 기초하는 유용한 진보와는 다른 인간적인 영역과 관련된 섬세한 진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섬세한 진보는 인간과 관련된 진보다. 인간을 교육하는 문제, 다시 말해 인간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고, 스스로를 돌보고, 신경증을 예방하고, 즐거움을 상상할 수 있는지 따위의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일들도 모두 진보의 영역에 해당한다. 비록 유용한 진보만큼 쉽게 손에 잡히는 관념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파스칼 샤보는 특히 번아웃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 섬세한 진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는 파스칼 샤보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번아웃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이 겪는 다양한 문제와 관련해서 섬세한 진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극단적인 권력 남용 사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의료의 범위를 참혹한 응급 환자에만 국한해, 정작 널리 퍼져 있지만 덜 극적인 다양한 질환을 연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이 구절이 파스칼 샤보가 이야기하는 섬세한 진보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소설에서는 여자 주인공 앨리스가 남자 주인공 에릭에게, "당신이랑 이렇게 있으면 정말 편안해요."라고 했고, 이에 대해 에릭은 "나도 당신이랑 있으면 편안해요."라고 말하는 대신 "오늘 저녁 몇 시에 본드 영화를 하죠?"라고 말한다. "맞은 사람도 없고, 멍이나 비명도 없었지만, 권력의 균형이 에릭 쪽으로 확 쏠렸다."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서의 권력관계를 이렇게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대 담론만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작은 담론의 가치는 폄훼되고는 하는데, 알랭 드 보통은 작은 이슈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사랑에서는 많은 경우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더 큰 권력을 갖는 것 같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들은 불편함이 없고, 그러니 사랑의 권력관계에 대해 무관심하다. 여성들은 사랑에서 더 적은 권력을 갖고, 자주 남성과의 관계에서 굴욕감 또는 수치심을 느낀다. 그렇지만,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상태로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불행해한다.

여성이 결혼하고 출산하고도 성장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섬세한 진보를 만드는 데는, 또는 사랑에서 대등한 권력관계라는  섬세한 진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경험을 보고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실패든 성공이든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 깨달음들을 서로가 교환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알랭 드 보통이 소설 속에서 암시하고 있듯,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즉 심각한 가정폭력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남편의 불평등한 언행을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딸과 후배 여성들이 활용할 수 있게 말이다. 딸과 후배들이 우리의 보고를 참고해서, 일상생활에 만연한 불평등한 관행과 언행을 알아차릴 수 있게 말이다.


샤보, 파스칼 (2016). 너무 성실해서 아픈 당신을 위한 처방전: 굿바이 번아웃(허보미 역. 원저 Global Burn-Out by Pascal Chabot, 2016). 함께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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