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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Oct 15. 2021

더 체어(2021) 리뷰: 오늘날 대학의 민낯


이미지 출처: https://www.rottentomatoes.com/tv/the_chair_2021/s01



지난번에 학부 시절 이야기를 글로 썼더니 주변에서 대학원 시절 이야기도 써 보라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트라우마 도진다는 이유였다. 사실 지금 이 짧은 한 줄을 쓰면서도 대학원 생활을 회상하니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참… 힘들다…….


무사히 학위 받고 졸업했으니 괜히 쓰는 나도 읽는 사람도 짜증나는 이야기들을 길게 풀어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 아닌가. 그러다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를 봤다. 와, 정말 소름돋게 몰입되고 답답하고 잊고 싶은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힘들었다. 이 드라마 리뷰를 통해 내가 석사 시절 잠깐 몸담았던 영문학이라는 학문과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 오늘날 대학의 모습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부터 포스팅에 사용된 모든 스틸컷의 출처:

http://www.beautifulballad.org/2021/07/24/check-out-new-images-from-netflixs-the-chair/


아래 리뷰에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영문학과 학과장이 된 동양인 여성, 지윤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건물. 지나칠 때마다 먼지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동시에 날 것 같은 복도. 벽에 붙은 옛 석학들의 초상화. 언뜻 평화롭고 고즈넉해 보이는 교내 분위기. 미국, 가상의 아이비리그 대학 펨브르크. 이곳에 한국계 김지윤 박사가 여성 최초이자 유색인종 최초 학과장으로 취임한다. 남다른 감회를 느끼며 널찍한 사무실에 입성했더니 ‘잡것들 중 우두머리 잡것’ 이라는 유머러스한 명패가 정성스레 포장된 채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더 체어라는 제목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표면적으로는 지윤이 맡은 직책(학과장)을 가리키고 문자 그대로 보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 즉 어떤 자리나 위치를 상징한다. 물론 아무나 앉을 수 없는 특별한 자리, 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는 위치다. 학과장 사무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의자에 앉은 지윤은 곧 만화 주인공처럼 우당탕 소리를 내며 옆으로 고꾸라진다. 나는 이 도입부가 참 재미있었고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아주 완벽하게 축약적으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대학이라고 하면 막연히 정적이고 온화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내가 아싸라 대학 생활을 비교적 조용히 보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내게 대학은 말 그대로 학교였고, 공부하는 곳이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이 대학은 사실 생각보다 시끄러운 곳이고 사람이 모이는 다른 모든 장소와 마찬가지로 온갖 욕망이 교차하며 비일비재하게 사건 사고가 터지는 곳이다.




학과장으로 취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윤의 눈앞에 펼쳐진 길은 만만치 않다. 사진 속 저 원로 교수들을 좀 보라…… 벌써 현기증이 난다. 특히 맨 오른쪽에 앉은 미국문학 전공 엘리엇 교수는 보는 내내 나를 매우 괴롭게 했다.


왜 펨브르크 대학 영문학과는 김지윤 교수를 학과장으로 임명했을까? 언제부턴가 세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인문학의 위기’ 이슈와 무관하지 않다. 작중 영문학과는 심각한 위기에 당면해 있다. 사회에 나가 살길이 보장되지 않으니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덩달아 편성되는 예산도 줄고,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지만 종신직을 보장받아 높은 연봉을 챙기고 있는 늙은 교수들은 골칫거리가 되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학교는 영문학과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지윤은 취임하자마자 라슨 학장에게 불려 가서 리스트를 하나 건네받는다. 그 리스트의 상위 3명은 나이 많고 수강생을 거의 확보하지 못한 종신 교수들인데, 그들을 잘 설득하여 퇴직금을 받고 이제 그만 강단에서 물러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펨브르크를 21세기로 이끌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요딴 소리를 하면서 팍팍 부담을 준다. 결국 우리 과는 낡아빠져서 도태됐고 이젠 썩은 가지들을 쳐내야만 할 때야, 그래서 비교적 젊은 여성에다 유색인종인 너를 학과장으로 삼아 줬잖니, 이제 너의 손으로 친히 늙은 백인 꼰대 교수들을 우리 학교와 손절시켜 줘, 라는 말을 돌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윤은 이 제안이 몹시 불편하다. 사람을 어떻게 나뭇가지 자르듯 싹둑 잘라낸단 말인가? (나무라고 막 잘라도 된다는 말 아닙니다) 아무리 지금 실적이 후달린다지만 저 교수들은 펨브르크에서 오랫동안 강단을 지켰고 미국 문학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인데? 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나보다 학계에서 유명한 대선배들인데? 내가 직접 저 사람들을 자르라고? 인문학 한다는 사람들끼리 거 너무 인정머리 없는 짓 아닙니까.


모든 탁상행정과 주먹구구식 일처리가 그렇듯이 학교 측은 구조적, 제도적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쳐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단 일단 대강 불필요해 보이는 건 없애고 겉보기에 새로워 보이도록 포장하면 될 거라는 안이한 발상을 하고 있다.




학교의 입장이 뭐가 문제야?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전제품만 하더라도 오래된 부품은 교체하는 게 맞고 사용 전력량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면 버려지곤 한다. 인간도 투자 대비 결과가 미흡하면 내쳐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현대인들에겐 참 슬프게도 익숙한 자본의 논리다.


그러나 말없는 기계 부품과 달리 인간은 자아와 의식이 있다. 리스트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된 노교수들은 물러서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쫓겨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은퇴를 고려한 적도 없다.


“이 일은 나이가 들수록 존경받는 아주 드문 직업이다. 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늙어서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학과장을 선출했다. 우리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다들 교수가 되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무렵, 나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교수진 약력 찾아보다 혀를 내둘렀다. 논문을 몇 편이나 발표했으며 책은 또 몇 권이나 썼는지, 학회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얼마나 많은 활동들을 하셨는지. 학계 레벨로 치면 쪼렙 오브 쪼렙인 석사논문 하나 완성하는 것도 미친 듯이 힘들다.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학문에 대한 교수들의 기여는 항상 존중하고 그들의 노력 또한 존중한다. 임용되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임용 후에도 교수는 할 일이 상당히 많다. 꿀 빠는 직업 절대 아니고 되고 싶다고 쉽게 될 수 있는 직업도 아니다. 힘들게 일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종신직을 보장받았는데 갑자기 말 바꿔서 내쫓는다니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적어도 나는 사람이 늙었다고, 특정 기대치에 어긋난다고 해서 무작정 내치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다 보면 꼭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한 번씩은 주고받게 된다. 아, 그 교수님이 똑똑한 건 알겠는데 강의는 정말 못하셔. 그 강의는 전공필수라 듣긴 하는데 너무 지루하고 일방적이라 솔직히 안 듣고 싶어. 기타등등.




학생이 공부를 할 때 저마다의 공부 방법이 있듯 가르치는 사람도 각자만의 스타일이 있다. 어떤 스타일이 더 좋고 나쁜지는 주관적인 취향의 영역이지만, 만약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외면받아 학교에서 권고 퇴직당할 위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교수 입장에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종신직 심사를 앞두고 있는 야스민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강의 시간에 다루는 텍스트는 케케묵은 고전이지만 그 고전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학생들은 어떤 관점으로 텍스트에 접근하고 있는가? 고민한 뒤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양한 시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려 하 학생들이 요구하는 논의에 부응해 준다. 학생들이 텍스트를 좀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좋아하는 구절을 SNS에 올리는 과제를 내기도 하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강단에 나와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현대적 관점의 비평을 수용한다. 지윤은 야스민의 교수법이 대단히 혁신적이라고 찬사를 보내면서 그녀 덕분에 학생들이 케케묵은 150년 전의 텍스트들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전형적인 꼰대인 엘리엇 교수는 이 모든 행위들이 난잡한 광대 놀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학을 똑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Close Reading이 필요하고 나는 학생 취향대로 강의하는 영업 사원이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아 진짜 트라우마 도진다.


엘리엇 교수가 생각하는 문학 교수법과 학습법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어떻게 감히 틀렸다고 말하겠는가. 지금도 여전히 각광받는 유효한 방법이자 보편화된 방법인데. 나도 그냥 책상에 붙어 앉아서 텍스트 꼼꼼히 읽어가며 공부하고 논문 썼다. 전통적이면서 정통적이고, 왕도이지만, 낡은 방법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만이 문학을 접하고 향유하고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 학생들이 문학을 왜 전공까지 하려고 하는가


왜겠어요? 사랑하니까 그렇지……. 이 죽일 놈의 사랑….

교수님들도 다 문학 사랑해서 밥 먹고 책만 읽다가 교수까지 되신 거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에 문학 사랑하기 쉽지 않아요… 흑흑 전공생들을 소중히 여겨 주세요…….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요즘 세상에선 대충 열 살 정도만 돼도 알 거 다 안다. 길 가다 만난 쪼끄만 애가 언니 대학생이에요? 전공이 뭐예요? 물어보길래 언니는 영문학과란다~ 대답하면 그럼 나중에 뭐 먹고 살아요? 소리 듣는다는 말이다.


밥버러지라는 죄책감을 등에 업은 채 문송해하며 그래도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 결심한 오늘날 대한의 영문학도들이 때묻지 않은 원대한 열망을 지니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왔더니 엘리엇 같은 교수를 만났다? 뒤늦게 사랑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으며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음을 깨닫고 멘탈 레벨업하여 현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작중 영문학과 학생들은 멜빌 텍스트미소지니에 대해서 논하길 원하고, 『모비 딕』에서 향유 짜는 선원들을 묘사한 장면이 너무나 호모에로틱하다는 것과 피쿼드호 속에 여자가 없듯이 남북전쟁기 미국 문학 르네상스(American Renaissance)에도 여성 작가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비 딕』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이전 세대가 그랬듯 계속 찬미하는 대신 어떤 한계를 품었고 현대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토론하고 싶어한다. 야스민은 이 요구에 화답하고, 엘리엇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은 관점이라고 일축한다. (즉 신비평을 하자는 것인데 정작 본인은 자기 입맛에 맞는 텍스트 외적인 자료-호손과 멜빌이 주고받은 편지-를 강의에 활용하려고 해서 학생들에게 대차게 까인다…….)


학과장뿐만 아니라 교수라는 직책도 결국은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특별한 위치다. 교수 자리에 앉았다면 그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이 주어진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니까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고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도 교수가 지닌 하나의 막중한 책임 아닐까 생각한다. 역량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소통하려고 시도는 해야 한다. 자기만의 방식 말고 학생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 방식이 (특히 세대 차이가 많이 날수록)생소하고 낯설 수는 있겠으나 무조건 철없고 의미없고 천박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써 봤자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는 그 수많은 교수님들(다분히 일방적으로 소통하자고 하면서 자신은 학생들과 잘 교류하기에 꼰대가 아니라고 믿고 있음)의 굳건한 고집과 프라이드는 앞으로도 여전히 굳건하겠지……. 멜빌이 씹힌다고 당신이 씹히는 것은 아닌데도.


쓸한데 작품엔 죄가 없지만 끔찍한 추억이 떠올라 다시는 펴 보지 않게 되는 그런 책들, 그런 작가들이 있다. 문학이 좋아서 전공했는데 교수가 싫어서 문학까지 싫어진다니 참 비극적인 일이다. 일은 잘 맞고 좋지만 사람이 싫어서 퇴사하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 아닐까 싶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다양성


펨브르크 교직원의 87%는 백인이다. 야스민은 시카고대와 예일대에서 눈독 들이는 인재인데도 펨브르크 종신직 심사 통과는커녕 우수 강의 심사 통과도 안 되고 있는 상황. 여성, 유색인종 교직원이 더 필요하다는 지윤의 말에 라슨 학장은 리스트에 오른 노교수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중 하나가 사라지면 그때 합시다라는 인성 터진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쇄신 운운하면서도 어쨌든 너희들의 차례는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얘기. 진짜 재수 없음;)


사실 지윤이 학과장이 아니라 다른 누가 학과장이 되었다고 해도, 현재 펨브르크 영문학과가 처한 상황은 노답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한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가령 가상의 젊은 백인 남성 교수 톰이 학과장이 되었다고 해도, 그 역시 노교수들에게 은퇴를 종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비인기 학과라는 오명을 어떻게 뒤집을지 줄어드는 수강생을 어떻게 다시 늘릴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이 떠맡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영문학과가 아니라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을 넘겨받은 것 같아. 그들은 여자가 들고 있을 때 폭발하길 바라겠지.”


유색인종 여성에게 그럴싸한 자리(학과장이라는 명분)를 내주고 자, 이제 네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봐. 한다고 정말 모든 게 마법처럼 스르륵 해결될까? 택도 없다. 오히려 자기들이 떠맡기 싫은 위기 상황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몰아 줬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처음 학과장 사무실에 들어간 지윤은 ‘내가 이 위치까지 왔구나, 이 자리가 내 자리라니’ 하는 감격과 뿌듯함에 젖어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곧 그 의자는 삐걱대며 지윤을 바닥으로 넘어뜨린다. 우리가 널 받아들인 줄 알았지? 사실은 아니란다. 하는 것처럼. 학과장으로 취임하면서 지윤에게도 지윤 나름의 많은 계획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야스민 교수의 강의를 우수 강의로 채택하려는 계획도 있었고, 그녀의 종신 심사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라슨 학장에게 압박받고 아직도 학과에서 권력이 막강한 노교수들에게 휘둘리며 하고자 했던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영문학과 학생들 역시 모든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학과장 사무실까지 찾아와서 우려를 표한다. 정치학과에서 유일한 유색인종 교수의 종신 임용을 거부했다고, 우리 학과의 야스민 교수도 걱정된다고. “흑인 교수들에게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그들의 연구는 엄밀성이 떨어진다고 간주된다. 그들은 덜 체계적이며 연대의식도 부족하다고 치부된다. 또 지윤의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은 이렇게 발언하기도 한다. “패널이나 강의계획서에 흑인 여성 몇몇을 올려 둔 다음 칭찬하고, 그게 전부다. 유색인종 몇 사람을 끼워 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이 지적하듯 인종에 따른 차별도 있고 성별에 따른 차별도 있다. 백인 노교수 3인방 중 유일한 여성인 조앤은 처음 부임했을 때 같이 부임했던 남자 교수에 비해 훨씬 낮은 연봉을 받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내의 온갖 잡다한 업무들을 몰아서 배정받았다. 리스트에 오른 건 셋 다 마찬가지인데 혼자서만 지하의 열악한 창고 사무실로 내쫓기기도 한다. 조앤은 참 복잡다면한 재미있는 인물인데 한편으론 다른 노교수들과 마찬가지로 꼰대면서 또 한편으론 매우 급진적(?)이다. (초서를 전공했고 <바스의 여인>을 처음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읽어냈다는데 또 교내 부당사항 신고 센터 타이틀 나인인가 거기 젊은 담당 여자 직원이 짧은 바지 입고 다니는 거 보고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개무시한다;)



사진 속 남자는 펨브르크 영문과의 트러블메이커 빌 돕슨 교수다. 엘리엇 교수 같은 정석꼰대도 극혐이지만 이 아조씨도 정말 보는 내내 나의 복장을 다 뒤집어 놓았는데…… 심지어 남주라 두 배로 괴로웠다.


이 포스트는 대학 이야기 위주로 작성했기에 개인으로서 또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지윤의 삶이 어떤지는 일부러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딸과의 서사, 빌과의 관계도 드라마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깨알 같은 한국 문화도 나온다. 그 부분도 흥미롭고 재미있긴 하다.


빌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하나뿐인 딸내미도 대학에 입학해 먼 타지로 가 버려서 우울하고 기댈 곳 없는 상태다. (제발 병원 가서 치료 좀 받아;) 성격이 좋게 말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나잇값 못하는 화상이라서…… 자다가 강의 시간에 늦질 않나 틀어야 하는 자료 잘못 틀어서 학생들한테 사별한 아내의 나체 영상을 보여주질 않나… 술 먹고 아리까리한 상태로 강의하면서 나치식 경례를 하질 않나…. (난 이 인간 조교가 너무너무 불쌍해서 과하게 이입하는 바람에 진짜 보면서 힘들었다……. 빌은 별로 안 불쌍함. 어른이면 인생의 고난을 제발 어른답게 이겨냅시다)


똥은 본인이 다 싸고 뒤처리는 남이 하게 만드는 타입으로, 강의 시간에 유머랍시고 했던 나치식 경례를 누군가 촬영해서 일파만파 퍼진 뒤로 논란이 커지자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이건 다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얘기야 내가 나치일 것 같아? 대학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지! 이러면서 안하무인으로 군다. 아 진짜ㅋㅋㅋㅋ 쓰면서도 너무 빡쳐…. 그래 놓고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야심차게 학생들과 공개 간담회 비슷한 걸 열더니 결국 한다는 말이 “내가 여러분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이 수준인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일로 학과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 난리가 났고 민폐 끼친 게 몇 사람인데 정말 양심도 없고 생각도 없고 반성도 없고…….


빌이 짜증나는 거랑 별개로 이 나치 논란 부분은 좀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바로 앞에서 한국인 이민자(지윤의 아버지 하비)가 일본에 극심한 반감을 가지는 건 조크 소재로 써먹어 놓고 나치식 경례는 빌의 인생과 커리어를 말아먹을 재앙이 된다; 제작진이 둘 다 똑같은 추축국이란 사실을 몰랐거나 모르는 척하고 싶은가 보다. 문학 말고 역사도 꼼꼼히 공부하신 뒤 만들었더라면 이 드라마가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아요. 문학도에게는 역사적 배경 지식과 공감 능력도 꼭 필요한 자질이랍니다:)


빌의 조교이자 대학원생인 라일리는 지도교수가 사고 치는 바람에 그간의 연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악몽 같은 상황에 처하는데……. 그나마 빌이 뒤늦게라도 수습해 주고 떠나서 구사일생한다. 지윤이 라일리에게 빌 말고 관련 분야에 영향력이 있는 다른 교수와 함께 연구해 보는 건 어떠냐고(엘리엇이었던 듯;) 조심스레 제안하자 전에 논문을 보냈는데 답을 주지 않으셨다고 대답하는 거 진짜ㅋㅋㅋ 눈물이 앞을 가렸다. 엘리엇은 과거에 지윤에게도 굉장히 차별적인 태도를 보였으니까 라일리가 지윤처럼 유색인종 여성이라 차별한 것일지도 모르고,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교수님의 피드백을 기대하지 않는 대학원생은 아주아주 많을 것이다……. 좋은 얘기가 아니라서 말을 아끼겠다. 원래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강해지자.


교수가 지난날의 영광에 매몰되어 뻗대며 고집을 피울수록, 자기 권력과 영향력 챙기는 데 급급할수록, 앞뒤 분간 못하고 제정신 빼 놓은 채 경거망동할수록,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지윤부터가 교수고 그녀의 주변 동료인 다른 교수들을 한 사람씩 부각시키며 내용이 전개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교수진을 연출할 때에 비해 학생들을 연출할 때 다소 과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빌의 공개 간담회 장면은 무슨 인민재판 같아서 상황만 놓고 보면 빌을 동정하기 쉽지만, 그 상황을 만든 것도 빌이고 간담회를 하겠다고 설친 것도 빌이다. 내가 보기에 학생들은 구구절절 옳은 소리 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아이고 여기나 저기나 참 막장이구나 싶으면서도 부러웠던 점들이 몇몇 있다. 드라마 속이라서 가능했던 걸까 실제 미국의 인문대 분위기도 비슷한 걸까, 유학파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빌의 만행이 심각한 논란이 되자 학교에서는 당연히 빌이 사과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식하고 대처한다. 학생들은 빌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자기 의견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의도치 않았지만 지윤 역시 부적절한 발언을 해서 큰 문제로 번지고, 무려 학과장인데도! 주눅이 들어 캠퍼스에서 학생들 눈치 보고 다닌다. 지윤이 안쓰러운 것과 별개로 학교에서 학생이 이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정말 판타지 같고 부러웠다…….


나는 이 드라마 속의 지윤에게 많이 공감했지만 빌을 싸고도는 부분은 진짜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아니 감정이 있으신 건 알겠는데 감정이 원래 맘대로 되는 게 아니긴 한데 그래도 그러지 좀 마세요 학과장님… 그 사람은 정말 글러먹었어요 교수로서도 남친으로서도…. 어쨌든 결국 지윤은 마지막 해임 청문회에서 자신이 빌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 태도는 참 좋았다. 이렇게 내 식구 감싸기 그만하고 공과 사를 잘 구분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 세상 모든 대학에 많아지길 기원해 본다.




6화 내내 펨브르크 대학을 둘러싼 온갖 난리법석을 목격하고 나니 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 모든 인물들이 서 있는 위치, 저마다 지키고 있는 자리, 심지어는 배경이 되는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가 새삼 부질없게 느껴졌다.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학교는 장사치 마인드로 어떻게 하면 화제를 더 끌어모으고 사람 모아 예산 확보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전문지식 없는 연예인 동원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반색함…. 천문학적 등록금을 받아드시면서 학생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왜 보장해 주지 않나요ㅠㅠ), 교직원들은 저마다 정치질하며 서로를 물고 뜯느라 바쁘고, 어떤 학생들은 공부하랬더니 도서관에서 교수 상대로 고소당할 음담패설 섞어가며 악플이나 달고 있다. 현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는 사실이 가장 씁쓸하다. (사실 현실에는 엘리엇과 빌을 합쳐 놓은 듯한 완전체 교수도 있고 나X위키에서 얻은 지식을 뽐내며 교수를 이겨먹으려 드는 미친 학생도 있다. 한둘이 아닌지 여기저기서 괴담처럼 들려온다….)


노교수 3인방의 주도로 학과장 불신임 투표가 진행되고 아주 적은 표차로 가결되자, 엘리엇은 징글징글하게도 자신이 다시 영문학과를 통솔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윤은 개소리 말라고 단칼에 자르며 조앤을 차기 학과장으로 지목한다. 결국 3보 전진, 2보 후퇴, 다시 1보 전진 같은 상황이 되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마무리된다. 어쨌든 빌도 잘렸고 차기 학과장이 엘리엇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주 개운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통쾌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빌 복직시킬 거면 시즌 2 만들지 말아 주세요. ㅋㅋ; 난 진짜 아직도 왜 이 인간이 남주인지 모르겠음. 가정적이기만 하면 단가요.








차기 학과장이 된 조앤은 들뜬 마음으로 들어간 학과장 사무실에서 지윤과 마찬가지로 예쁘게 포장된 ‘잡것들 중 우두머리 잡것’ 명패를 꺼내 보며 웃는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이 문구가 훨씬 더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그래, 학교든 교수든 학생이든 어차피 우리는 다 잡것이다. 사실 소위 인문학의 위기라는 것이 꼭 반지성주의의 대두와 독서인구 급감, 평균 문해력 저하, 그런 지표들로만 대변되지는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인간다워지는지 바로 그 사유의 부재 자체가 인문학의 위기다.


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사상, 감정, 삶, 오랜 세월 동안 소중히 여겨 왔던 가치를 대변하기 위해 섬세하게 또 신중하게 언어를 다듬어낸 결과물이다. 문학은 모든 잡것을 위대하게 만들면서 모든 위대한 것들도 사실은 잡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알려준다. 그런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업으로 삼을 만큼 열중했다는 사람들이 과연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The Humanities. 학과명에 걸맞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가. 문학하는 우리는 어느 시대건 배 곪는 탕아고 반항아들이라 결코 기득권이 될 수 없는가. 아마도 변화와 쇄신은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인정하는 순간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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