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어퍼이스트사이드, 화려한 정글과 지난한 생존기
부동산업계의 언어는 옷차림이다. 판매자 측 중개인의 옷차림은 판매자에게 씌워주고자 하는 위엄을 나타내며, 구매자 측 중개인의 옷차림은 잠재 구매자의 이미지를 반영함으로써 양측에 진지한 구매의사를 전달한다.
(…) 그 첫날, 네댓 군대의 아파트를 둘러보면서 만난 중개인들 상당수가 샤넬 백을 들고 있었다. (p.51)
매매가로 따지면 애틀랜타나 그랜드래피즈의 수영장 딸린 저택에 맞먹는데도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아파트는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늘 같은 식이었다. 파크 혹은 매디슨 혹은 피프스애비뉴라는 ‘특권층’ 주소에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로비와 관리직원들을 갖춘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아파트로 들어서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눈을 의심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멋들어진 여자들이 이런 데서 산다고?’ 몇몇 아파트는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완벽하게 깔끔했지만, 대부분 아니면 상당수가 은근히 혹은 대놓고 방치된 상태였다. (p.57)
“이런 구두는 잠깐씩만 신는 거예요. 말씀하신 모임이 장시간 이어지는 행사라면 미리 ‘주사’를 맞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뭐라고요?
그가 웃으며, 밤새도록 킬힐을 신을 수 있게 발을 마취하는 주사에 관해 들어본 적 없느냐고 되물었다. 듣자 하니 이곳과 할리우드에는 여성이 하이힐을 원 없이 신을 수 있게 해주는 족부 전문의들이 있으며, 나도 돈만 내면 주사를 맞고 하이힐 위에서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는 얘기였다. (p.218)
(…) 주변 엄마들을 관찰하고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식사하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뚜렷이 보였다. 그녀들의 삶과 행복과 정체성은 전적으로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달려 있었다.
그녀들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밤잠을 설치는 이유가 그것임을 알든 모르든, 어쩌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자신을 버릴지도 모르는데 남편 없이 혼자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단순한 자각이 공복으로 인한 통증만큼이나 고통스럽게 그녀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p.281-2)
(…) 성비가 유리한 환경에서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의존적인 아내와 더 의존적인 자녀들을 거느리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특권층 남성은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 남편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에 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그런 방식으로는 밥벌이하는 자의 권위를 살 수 없다. 이를 잘 알거나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기에, 남편의 권위와 자신의 권위 사이에 있는 심연 같은 차이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생각 있는 여자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p.243)